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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 부패하고 불의한 조직 논리를 따르지 않기를 바라며
▲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2025년 12월 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2025년 정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난밤 꿈에 와인 바에서 너를 만났다.참으로 기괴하지?꿈이라서일까,대충 헤아려 봐도 얼추 10여 년 만에 얼굴을 마주한 셈인데도 엊그제 만난 것처럼 친숙했다.너와 반갑게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동행복권 파워볼 폐지함께 온 일행은 아랑곳없이 마주 앉아 밤새 술잔을 기울였다.그리고 잠이 깼다.

꿈은 현실과 정반대라더니,꿈속 내 모습부터 낯설었다.이태 전부터 이러저러한 이유로 술을 아예 끊었으니 말이다.처음엔 시쳇말로 '술이 당길' 때도 있었지만,이젠 웬만한 술자리는 모두 피한다.단체 회식 자리 또한 사라진 지 이미 오래여서 딱히 눈치 볼 일도 없다.

네가 천신만고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얼굴을 본 때가 마지막 만남이었다.그때 부모님과 함께 교무실까지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건넸고,모두가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학교에 들어서면서 교문에 이름이 적힌 '경축 현수막'이 내걸려 있어 쑥스럽고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넌 모두가 '법 없이도 살 친구'라고 칭찬할 만큼 착실했고 공부도 매번 전교 1,동행복권 파워볼 폐지2등을 다투는 모범생이었다.영화배우 뺨칠만한 외모에 훤칠해서 교사들 사이에서 '역대급 엄친아'라고 수군댈 정도였다.네게 남은 거라곤 사법시험 합격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돌기도 했다.

그때 너와 포옹하며 건넸던 '덕담'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부디 부와 권력을 탐하지 않는 좋은 법관이 되어 달라는 것.학교생활 내내 곁눈질하지 않고 공부에만 매달렸고,단 한 번 말썽을 피운 적도 없는 네게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학창 시절 넌 별명부터 '검사'였다.

'희대의 사법부'라는 말.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  대법원 앞모습.ⓒ 연합뉴스
잠에서 깬 뒤 한참을 히죽거리며 침대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꿈에서라도 널 만난 반가움 때문일 테지만,뜬금없이 꿈에 네가 나타난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이따금 네 또래 제자들로부터 네가 어느 지방법원에서 판사로 일하고 있다더라는 소식을 듣기는 했다.

아마도 근래 검찰과 법원 등 법조계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어 무의식중에 널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햇수로 치면 벌써 2년 전의 일이 됐지만,지난 '12.3 내란' 이후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로 손꼽히는 판검사들을 욕하는 게 어느새 온 국민의 '레저 스포츠'가 됐다.

한때 윤석열의 사병 집단을 자처했던 검찰을 빗대 '검사스럽다'는 조롱이 유행했는데,최근엔 '희대의 사법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조희대 현 대법원장의 이름을 수식어처럼 써서 불신을 자초한 사법부를 비난하는 거다.'정의의 최후 보루'여야 할 사법부가 '기득권 수호의 최후 보루'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안타깝지만,법조계를 향한 우리 사회의 경외심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그들이 '세상이 무너져도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면,순진하거나 바보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한다.로스쿨에 지원하는 아이들조차 '직업적 안정성'과 '사회적 대우'를 맨 먼저 입에 올리는 세상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는 너도 잘 알 것이다.일개 검사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앞에서 오만방자하게 구는 모습을 온 국민이 생방송으로 지켜봤다.또,기존의 판례도 무시한 채 국민의 법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론과 동떨어진 판결을 거침없이 내리는 판사도 경험해야 했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검찰과 법원 내부가 '평온하다'는 게 쉬이 납득되지 않는다.성찰을 요구하는 자정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되레 정치적 기소와 판결을 내린 자들을 두둔하고 엄호하는 이들만 득시글댄다.그들은 '사법부의 독립'을 마치 도깨비방망이인 양 휘두른다.

요즘엔 교사가 학교생활기록부의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이나 종합 의견을 작성할 때도 부러 피하는 문구가 있다.법조인이나 정치인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정의감이 투철하다'거나 '이타적인 성격'이라는 표현은 애써 삼간다.당락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하나 마나 한 미사여구로 읽힌다는 이유에서다.

"'정의의 사도'가 되겠다면,성직자가 어울리지.왜 판검사를 꿈꾸겠어요?"

너의 까마득한 후배가 될 한 아이의 이 말에 솔직히 충격을 금치 못했다.믿기지 않겠지만,요즘 아이들의 '정의관'과 법조인에 대한 인식이 이러하다.이렇듯 강퍅한 세대가 법조계의 주축으로 활동하는 때가 되면,과연 우리 사회는 어떠한 모습일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요즘의 '엄친아'들을 지켜보는 교사는 괴롭다.한 동료 교사는 지금 법조계가 부패에 둔감하고 엘리트 의식에 찌들어 있어 보여도 앞으론 더욱 심해질 거라고 예언했다.그는 엄혹했던 독재정권 시절보다 민주화된 지금 판검사들의 자질이 더 의심스럽다고 했다.사회지도층은커녕 시정잡배 수준의 법조인들이 너무 많다고 직격했다.

가인 김병로의 정신을 이어받았으면

▲  전북 순창군 복흥면에 자리한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가.일각에서는 전북 순창의 지명을 '가인'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을 만큼 순창을 대표하는 인물로 우뚝하다.ⓒ 서부원
혹시 임관 후에 가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만,동행복권 파워볼 폐지우리나라 법조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꼽았다는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가를 엊그제 다녀왔다.그가 나고 자란 곳이 넘어지면 코 닿을 듯 가까운 데 있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집에서 자동차로 고작 30분 남짓 거리였다.

너도 알다시피,그는 일제강점기 숱한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한 인권 변호사였고,해방 후 이승만 정부의 초대 대법원장을 역임했다.불의와 무소불위의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으로 후배 법조인들의 귀감이 됐다.그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기억된다.

무엇보다 그는 말이 아닌 올곧은 삶과 판결로 '사법부의 독립'을 이뤄낸 분이다.피고인을 심문하는 검사와 변론하는 변호사를 같은 높이에서 마주 앉도록 한 현재의 법정 배치는 그가 처음 도입한 걸로 알려져 있다.이전엔 검사와 판사가 나란히 자리했고,피고인과 변호사는 아래에 앉아야 했다.

6.25 전쟁 중 아내가 북한군에 피살됐는데도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앞장선 사실은 반공보다 인권을 우선시했음을 방증한다.법관으로서 사감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엄정성을 보여주는 명징한 사례다.그가 해방 후 정권의 반대에도 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에 매진한 것도 그래서다.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에 대한 연임 제한을 폐지하기 위해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을 시도했을 때,정권을 향해 외친 그의 이 발언은 청사에 빛난다.온갖 혐의를 들씌워 정적들을 마구 제거하던 광포한 시대에도 그의 강직함은 벼려진 상태 그대로였다.

불의한 대통령을 시민들이 권좌에서 내쫓는 민주화 시대에 거의 한 세기 전의 법조인을 회상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희대의 사법부'를 김병로 선생으로,이승만을 이재명 대통령으로 치환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이에 부화뇌동해 지금의 난국을 돌파해 보려는 얍삽한 법조인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설마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진 않겠지?이러한 일부 언론과 판사들의 몸부림을 아이들조차 '견강부회'라고 손가락질하고 있다.역사적 맥락을 거세한 단순 비교가 가당키나 하느냐는 거다.심지어 "사법부가 군대냐?"며 대법원장의 충복을 자처하는 판사들을 한껏 비웃고 있다.

김병로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생가의 복원은 물론,동행복권 파워볼 폐지인근에 '가인 연수원'이라고 하여 대법원 직속 시설까지 세워 놓았다.생가 가는 길뿐만 아니라 전북 전주시 법조타운에 이르는 도로와 그의 서울 집 주변 도로명도 그의 호를 따 '가인로'다.심지어 도로 인근 학교의 이름도 가인 초등학교다.

한때 그가 태어난 전북 순창군을 '가인군'으로 개명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그게 어렵다면,생가가 자리한 복흥면이라도 '가인면'으로 바꾸자고 말한다.'세종특별자치시'와 '김유정면','김삿갓면' 등 전국적으로 위인의 이름을 지명으로 끌어다 쓴 사례가 이미 많다는 거다.

▲  전주시 법조타운 인근 문화공원에 세워진 '법조 3성'의 동상.가운데 가인 김병로 선생을 모셔놓고,양옆으로 '사도 법관'으로 불리는 김홍섭 선생과 '청렴 검사의 표본'으로 평가받는 최대교 선생의 동상이 나란하다.ⓒ 서부원
지방검찰청과 지방법원이 나란한 전주시 법조타운 인근의 '문화공원'엔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김홍섭 판사와 최대교 검사를 곁에 나란히 모셔 놓았다.이른바 '법조 3성(聖)'으로 추앙받는 이들이다.그들의 공을 기리고자 한다면,기념물만 여기저기 세울 게 아니라 그들의 정신을 본받으려는 다짐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금 법조계엔 선생 같은 인물이 아예 없진 않을 텐데,왜 드러나지 않을까.그보단 그런 이들의 목소리는 조직 내에서 왜 늘 묻히고 외면당하는지 묻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꿈속에서 넌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상명하복과 승자독식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정의'라고.

꿈은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하니,너의 진심은 분명 아니었으리라 본다.다만 걱정되는 건,근묵자흑이라고 공부 잘하고 한없이 착실했던 네가 부패하고 불의한 조직 논리에 길들면 어쩌나 싶은 마음뿐이다.어느덧 중년의 나이를 지나고 있는 네게 당부 한마디 남기고 글을 마친다.건투를 빈다.

"좋은 법관만으론 부족하다.부디 존경받는 사회지도층 인사가 되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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