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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동창생들과 떠난 세 번의 환갑여행【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고 시절에 만나 인생의 굴곡을 함께 건너온 친구들과 예순이 되어 특별한 여행길에 올랐다.환갑이라는 이름의 이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서로의 시간을 축하하고 남은 삶을 다짐하는 작은 의식이었다.
여고 동창 모임은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이다.서울,수원,인천,구미,대구에 흩어져 살지만,1년에 두세 번은 만나 삶의 여정을 나눠왔다.지난해 모임에서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가족들이 환갑잔치를 열어주지 않을 것 같으니 우리끼리라도 서로 축하해 주자."
그 말 한마디로 우리만의 환갑여행이 시작되었다.작년부터 올해까지 차례대로 친구들의 환갑을 기념하며 여행을 이어왔다.평균 수명이 늘어난 시대,경마식 보도환갑은 더는 '노년의 문턱'이 아니다.친구들과 함께한 이 시간은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게 했다.
지난 20일은 나와 대구에 사는 친구의 환갑여행 날이었다.생일이 며칠 차이라 같은 날로 정했다.멀리 떨어져 사는 만큼 최소 1박 2일 일정이 필요했다.작년에는 구미와 수원에 사는 친구의 환갑을 맞아 여행했고,올해 중반에는 서울과 인천에 사는 친구의 환갑여행을 다녔다.이번 여행은 내 생일을 기념하는 마지막 환갑여행이기도 했다.
나의 부모님 세대에는 예순까지 산 것 자체가 큰 경사였다.조선 시대만 해도 평균 수명은 40세 안팎이었고,60세까지 사는 일은 드물었다.환갑은 하늘이 한 번 더 시간을 허락했다는 뜻의 축복받은 나이였다.
친정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환갑을 맞으셨다.대문 밖 작은 텃밭에 환갑 상을 차렸고,전날부터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마당에는 솥이 걸리고,전을 부치는 냄새가 가득했다.아버지 생신은 음력 2월의 찬 날씨였음에도 동네 어르신들과 오빠의 친구들이 모여 축하했고 사진도 찍었다.지금도 그날 내가 입었던 옷이 떠오를 만큼 선명한 기억이다.환갑잔치는 부모님을 위한 자리이자,동시에 자식의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는 의식이었다.
요즘은 환갑잔치가 사라진 게 아니라,환갑을 기념하는 방식이 바뀌었다.요즘 환갑잔치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당사자의 인식 변화이다.늙었다고 공식 선언하는 것 같아서,주인공이 되는 게 부담스러워서라는 이유로 조용한 방식을 선호한다.보여주는 효보다 당사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효가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20일 정오,인천에 사는 친구가 가장 먼저 동대구역에 도착하였다.대구에 사는 다른 친구가 마중을 나갔고,서울과 수원에서 오후 늦게 도착하는 친구들은 내가 마중을 나갔다.구미에 사는 친구는 거리가 가까워 차를 몰고 내려왔다.
대구에 오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동인동 찜 갈비'이다.1960~70년대,동인동 뒷골목에서 시작된 이 음식은 인쇄소,관공서,경마식 보도시장 상인과 노동자들의 허기를 채우던 서민 음식이었다.냉장시설이 부족하던 시절,고기 잡내를 없애기 위해 고춧가루와 마늘,후추를 듬뿍 넣어 국물 없이 자작하게 졸였다.그때는 다닥다닥 붙은 골목 가게에서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갈비찜을 내주었다.현대의 동인동 갈비찜 식당은,경마식 보도대구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외식 문화가 되었다.
우리도 동인동으로 향했다.예전에는 너무 매워서 호호 불며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맵기조절이 가능해 한결 편해졌다.갈비찜의 맛은 자연스레 우리의 추억을 불러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환갑을 기념해 준비한 25년산 양주를 나눠 마시며 수다는 새벽까지 이어졌다.자녀 이야기,손주 자랑이 오갔지만,깔깔 웃는 모습만큼은 여전히 여고생 같았다.
다음 날 아침,요리사인 친구가 전복죽과 샐러드,경마식 보도두부로 간단한 아침상을 차렸다.이후 수성 관광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수성못을 한 바퀴 걸었다.겨울이지만 날씨는 포근했고,친구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나이가 들면 부부와 친구만 남는다는 말이 실감 났다.
두 해에 걸친 환갑여행이 이렇게 마무리되었다.이 시간은 오래도록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내년 1월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기차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아쉬웠다.언제 만나도 반가운 친구들,인생을 살아가는 데 이보다 든든한 '길벗' 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