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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국의 오사카 생존기] '여행' 아닌 '오사카살이'를 시작하며【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도톤보리,글리코상,타코야키,유니버설스튜디오,우메다,난바.오사카,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입니다.오사카라는 지명 뒤에 무슨 말이 가장 어울릴지 AI에게 물었더니 '여행'이라고 답을 합니다.여기,오사카 여행이 아닌 오사카살이를 시작한 특이한 중년 남성이 있습니다.마천루가 즐비하고 네온사인과 휘황찬란한 불빛을 자랑하는 오사카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변두리에서 오사카 주민으로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독거 일기를 시작합니다.반년간 펼쳐질 좌충우돌,실수 만발 오사카 생존기를 시작합니다.<기자말>

▲ 오사카 우메다 스카이빌딩에서 바라본 오사카 시내 전경 오사카 우메다 스카이빌딩에서 바라본 오사카 시내 전경.공중정원이라고도 부른다.아베노하루카스와 더불어 오사카 야경 명소로 꼽힌다.ⓒ 김용국
"나 오사카 다녀올게,6개월만"

"저기,나 말이야,오사카 좀 다녀올게."
"어디?오사카?여행?돈도 많네.며칠이나?"

"그게 말이야,육."
"뭐?6일?그렇게나 오래 간다고?"
"그게 아니라,6개월,반년이라고.그리고 여행이 아니야."

밥을 먹던 가족들은 수저를 놓고 모두들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이때가 작년 여름쯤이었나.농담인지 진담인지 밑도 끝도 없이 오사카라니.며칠도 아니고 6개월씩이나.하긴 내가 생각해도 황당하다.

내막은 이렇다.직장생활 27년차.평생 직장이 사라졌다는 시대에 이렇게 긴 시간을 한 곳에서 일할 줄 나도 몰랐다.휴직이나 안식년 같은 쉼표를 찍을 여유도 없었다.그 사이 우여곡절도 많았고 번아웃 비슷한 증상도 있었지만 어찌저찌 버텨왔다.

이제부턴,퇴직할 요량이 아니라면 뭔가 변화와 자극이 필요했다.가장 원했던 건 직장의 해외연수제도.그래서 40대부터 해외 대학 연구원 신청을 시작했다.소수만 선발했던 탓인지 내가 무능한 탓인지,해마다 번번이 탈락했다.이 길은 아닌가 싶었던 순간,오십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선발이 되었다.다시,2년간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2025년말 드디어 6개월 연구 기회를 얻게 되었다.나로서는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일본,그 중에서도 오사카를 가는 까닭

▲ 도톤보리의 글리코상 오사카의 상징 중의 하나인 글리코상.도톤보리 강변에 있으며 관광객들의 1순위 촬영 대상이다.ⓒ 김용국
그런데 왜 하필 오사카냐고?해외연구를 하려면 일정 수준의 어학점수가 필요하다.미국,영국,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를 가려면 영어 성적이 좋아야 한다.영어는 손을 놓은 지 오래.오십줄에 영어학원까지 다닐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스페인,프랑스,독일 등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더구나 생김새도 다르고,생활방식도 완전히 다른 서양 사람 틈바구니에서 반년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자연스레 아시아권인 일본,중국으로 관심을 돌렸다.중국은 어학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게다가 나로서는 연구할 만한 매력적인 주제를 찾지 못했다.일본의 경우,독학으로 조금씩 일본어 공부를 해왔고 관심 분야에서 우리와 비슷한 제도들이 많았다.개인적으로는 우리에게 아직 남아있는 식민 잔재의 원인을 알아보고 싶기도 했다.

말은 장황했지만,사실 어학 성적 통과가 가능한 나라는 일본 뿐이었다.그리고 일본 대학 가운데 '연구원으로 받아달라'는 나의 호소를 흔쾌히 수용한 곳이 오사카대학이었다.수십차례 메일을 주고 받고,번역기를 돌려가며 연구계획과 이력서 등을 제출한 끝에 비자까지 받을 수 있었다.

'여행' 대신 오사카살이를 시작하다

오사카 뒤에 붙는 수식어는 여행이다.그런데 나는 오사카 여행이 아닌 오사카살이를 하게 된다.며칠 가서 먹고 자고 구경하다 오는 여행과,연구 활동 외에도 장보기에 밥하기,설거지,빨래,청소까지 하며 정착하는 삶은 차원이 다르다.잘한 결정일까.잘할 수 있을까.

가족들은 "지진도 많은 동네에서 굳이 살려고 하느냐"며 걱정한다.내가 일본으로 간다는 말에 동료들은 "친일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라"는 농담까지 건넨다.여행지로서는 몰라도 삶의 터전으로서 우리가 갖는 일본에 대한 반감은 컸다.

사람은 간사하다.아니,고백하건대 나는 간사했다.해외 연구 기회만 얻게 되면 새 삶을 살 것처럼 간절했건만 막상 기회가 주어지니 다시 저울질을 하고 있다.어쨌거나 주사위는 던져졌고,나는 2025년 12월 인천발 오사카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몇 달 동안은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업무 인수 인계에,연구 자료 정리에 숙소 구하기,출국 준비까지 시간이 부족했다.이런 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료,해외 축구 무료 실시간 tv 중계 블루티비선후배들은 떠나기 두 달 전부터 환송식을 한다며 밤마다 나를 불러냈다.명분은 다양했다.

"선배,반년이나 못 보는데 찐하게 막걸리 한 잔 해요.일본애들은 우리처럼 서로 술 따라주지도,권하지도 않아요.정이 없어요,정이."
"치킨,족발,삼겹살,일본 가면 이런 거 없어요.있어도 맛이 달라요.사줄 때 먹어요."
"너,한국 소주가 일본에서 얼마나 비싼 줄 알아?여기서 실컷 마셔,원샷."

한국에는 있고 일본에는 없는 것들

당시에는 바쁜 나를 밤마다 괴롭히는(?) 동료들이 원망스러웠고 몸도 축나서 힘들었다.그런데,돌이켜보니 그게 떠나는 사람을 아쉬워하며 진하게 작별을 고하는 한국 사람의 사는 방식이었다(그리고 일본에 와 보니 그들이 했던 말은 신기하게도 다 맞는 말이었다).

드디어 출발 당일.전날 잠을 설쳤지만 일찍 눈이 떠졌다.내 짐은 3개.여행용 캐리어,백팩,자전거 가방.28인치 캐리어에는 옷가지와 필수품만 담았는데도 30Kg에 육박한다.자전거 가방은 접이식 미니벨로와 부속품을 실었더니 20Kg,노트북과 책 몇 권 등이 담긴 백팩은 15Kg이 나간다.이 짐을 오롯이 감당하면서 오사카 숙소까지 가야 한다.도저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가 없었는데 최근 30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원하지 않게 '희망' 퇴직을 한 고향친구가 차를 몰고 집으로 왔다."나 지금 백수라 시간이 많다.공항까지 데려다주마."

일본에서 자전거가 필수일 것 같아서 챙겼지만 무리가 아닌가 싶었다.수하물로 부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다행히 통과다.공항에 또 한 친구가 나왔다.직업이 비행기 기장이라 아침에 하와이 갔다가 다음날 프랑스를 가는 식으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이 친구는 "겨우 오사카 가면서 요란을 떠느냐"고 면박을 주면서도 외국생활의 조언을 잊지 않는다.친구들의 환대를 받으며 출국장을 빠져나간다.

▲ 국적불명의 기내식 인천발 오사카행 비행기 안에서의 기내식.한국식도,일본식도 아닌 국적을 알 수 없는 메뉴다.ⓒ 김용국
정체불명의 기내식에 마음은 더 '심란'

이제 실감이 난다.6개월간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무엇을 얻어서 가야 하나.막막한 기분으로 비행기에 올랐다.이내 기내식이 나온다.국적기를 탔건만 정체불명의 식사가 나왔다,한국식도 아니고 일본식도 아닌.그래선지 나의 복잡한 심정이 더 심란해진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음악을 듣고 있자니 기내방송이 나온다."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간사이 공항에 도착합니다."

저 멀리 창밖으로 인공섬으로 만들어진 간사이 공항이 보인다.공항에 도착하니 직원이 재류카드를 바로 발급해 준다.3개월 이상 일본에 체류하는 외국인에게 주는 신분증이다.

▲ 하늘에서 본 간사이 공항 하늘에서 본 간사이 공항.비행기 창밖으로 인공섬으로 만들어진 간사이 공항이 보인다.ⓒ 김용국
백팩을 메고 캐리어를 끌고 자전거를 들고 공항을 나선다.숙소 근처로 가는 공항버스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잠시 후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 기사가 내 짐을 보더니 "이 자전거를 직접 가져왔느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답했다.이런 걸 가져왔냐는 듯 약간 놀라는 눈치다.다행히도 버스 트렁크에는 짐을 2개까지 실을 수 있어서 버스도 승차완료.

여기서 다시 1시간 반을 외곽으로 가야 숙소에 도착한다.낯선 도시의 낯선 버스에 몸을 맡긴 채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음악을 듣는다.유튜브에서 '한국 가요'를 검색해서 무작위로 들었다.알고리즘 때문인지 내가 자주 듣던 김광석,이문세,김현식 노래가 나온다.그러다가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이라는 곡이 흘러나온다.멜로디는 익숙했지만 가사는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노랫말 하나하나가 귀에 들어왔다.나를 위로하는 노래인 것도 같았다.그러고 보니 내가 버스로 향하는 지역은 호타루가이케(蛍池).우리 말로 하면 반딧불 연못쯤 되겠다.예전에 이 근처에 반딧불이 많은 연못이 있었다지.묘한 인연이다."우주에서 무주로 날아온 밤하늘의 별들이 반딧불이 돼 버렸"다는데 내가 사는 파주에서 오사카로 날아온 나는 무엇이 될 것인지.

▲ 한국에서 가져온 짐 한국에서 비행기에 실어서 가져온 짐.28인치 캐리어 30Kg,접이식 미니벨로와 부속품이 담긴 자전거 가방 20Kg,노트북과 책 몇 권 등이 담긴 백팩 15Kg.이걸 가져오느라 애를 먹었다.ⓒ 김용국
파주에서 오사카로 날아온 나는

버스는 호타루가이케에 짐을 내려주고 떠났다.여기서 숙소까지는 2km 정도를 더 가야한다.짐 때문에 택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택시기사가 낑낑거리며 짐을 싣는데 트렁크에 실린 자전거는 문이 닫히지 않아 고리를 걸어야 했다.

10분 정도 거리에 요금은 1300엔,1만3천 원 정도가 나왔다.일본 대중교통 요금 실상을 실감한 순간이다.숙소 앞에 도착한 시각은 밤 8시경.캐리어와 가방,자전거만 덩그러니 놓여있다.이제 오롯이 혼자다.파주에서 오사카로 날아온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 숙소에서 바라본 전경 오사카 숙소에서 바라본 전경.앞쪽에 보이는 건물은 전부 대학 건물이다.ⓒ 김용국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낯설고 물선 이 도시에서 나는 반년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까.갑자기 허기와 함께 후회가 밀려왔다.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이제라도 다시 돌아간다고 할까.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 직장생활 열심히 하겠다고 부탁해 볼까.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아서라.그러기엔 너무 늦었다.이제 의지할 것이라곤 휴대전화,미니벨로 자전거,그리고 몇 푼의 돈뿐이었다.

숙소 관리인 대신 심야 당직 아르바이트생에게 열쇠를 건네받고 방으로 들어갔다.한기가 가득했다.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피곤과 허기 속에서 첫날밤은 속절없이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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