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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닿은 길.섬진강 방어의 전초였던 하동읍성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Bodog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기자말>
유난한 빗줄기가 남녘 산하를 흠뻑 적시던,정유(1597)년 5월(음력)이다.비는 멎을 줄 몰랐고,하늘과 땅의 경계마저 흐릿했다.그 빗속을 한 무리 사내들이 걷고 있었다.벼슬이 벗겨지고,홑 벌 백의만을 걸친 채 산 넘고 강을 건너야 하는 길이다.
그들의 걸음은 결코 가볍지 못했다.발자국마다 백성의 삶이 걸렸기 때문이다.천혜의 관문이라는 구례 석주관을 지날 때 질척이는 흙이 발목에 감아 돌았다.섬진강 옆 악양 들판도 붉은 흙탕물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비는 모든 걸 집어삼킬 듯 쏟아졌다.칼바람에 강토가 짓뭉개졌고,백성들 눈빛은 간단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뭇 생명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왕보다,그가 한 줄기 빛이었다.벼슬은 거둬갈 수 있을지언정,충의까지는 앗아갈 수 없었다.그게 왕의 얄팍한 능력이었다.백의 한 벌에 의지해 빗길을 걷는 당위도 그런 의기와 결기에서 말미암았다.같은 달 28일 하동읍성에 이르자 현감 신진이 그를 따스하게 맞아주었다.
곳곳이 허물어진 읍성 남문 밖으로,이순신의 소식을 들은 가녀린 백성들이 모여들었다.그들의 얼굴에 버짐처럼 두려움이 내려앉았지만,눈빛만은 따스함을 잃지 않았다.차갑고도 매서운 전란의 칼날에도,이 고장엔 아직 인의(仁義)가 살아있었다.그들의 정성은 말보다 깊었고,손길은 빗물보다 정갈했다.요란한 빗소리에도 장군은 그들의 마음을 능히 읽어낼 수 있었다.
비 내리는 깊은 밤,등잔불이 나라처럼 마구 흔들렸다.세찬 빗방울이 흙담에 부딪히고 얇은 창호엔 투두둑,얄궂은 물무늬를 아로새겼다.흔들리는 등불에 지난 전쟁의 처참함이 잔영처럼 되살아났다.노를 저어준 격군들,싸움터에서 스러져 간 병사들 얼굴이 방금인 듯 다가들었다.수천 마디 상찬이,백성 한명의 목숨을 능가할 순 없다.승리보다 먼저 지켜야 할 건 백성임을 뼈에 새고 있었다.그는 알고 있었다.나라는 백성의 땀과 눈물로 세워지고 지켜진다는 것을.
이튿날,다시 길을 나선다.세찬 빗줄기에도 그의 발걸음엔 더욱 힘이 붙었다.하동 백성이 보여준 따스한 온기가 축축한 등을 토닥여 주었다.백성을 거슬러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이 신념이 백의종군하는 이순신을 지탱시켜 주었다.그 믿음이 몇 달 후 명량에서 바다를 구하고,나라를 구한 바탕이 되었다.
금오산과 주교천의 읍성
지난 12월 중순 찾은 하동읍성은 섬진강 방어의 전초였다.왜구의 침입이 빈번하던 1417년,태종이 남해안 연안을 따라 읍성을 축조하라 명한다.왜구 방어의 적극적인 의지다.하동도 그 명을 받는다.여러 논의 끝에 고현의 양경산 자락이 성 터로 선정된다.
가야 때부터 소금 배가 드나든 주교천 배다리는 오랜 교역의 중심지다.뱀처럼 구부러진 냇물이 넓진 않아도 평야를 끼고 있다.남쪽에 앞세운 금오산 너머로 남해가 지척이고,그 사이가 물살이 센 노량이다.
왜구에 시달린 백성들이 흙을 파내고 돌을 나른다.비탈을 괭이가 깎아내고,돌마다 정과 망치가 땀을 튀긴다.첫 성의 둘레는 309m,높이 4m였다.작지만 단단한 산성형 읍성이다.성 안에 관아와 객사,창고가 세워지고 산성 여럿이 한 줄기 봉화로 연결된다.금오산은 성의 파수꾼이었고,주교천은 세상으로 열린 길이었다.
세월이 흘러 성이 넓혀진다.<문종실록>은 둘레 900m,높이 3~5m라 기록하고 있다.산자락 읍성이 관리의 공간이라면,주교천 배다리는 교역의 중심이었다.물길 따라 소금과 곡식,군량이 오간다.주성마을이 북적거리는 시장으로 한 시대를 구가한다.주교천 물길이 바쁘게 섬진강에 닿아 노량으로 흘렀다.지리산 연봉에 산성을 두어 읍성을 호위하게 하였다.
1593년 진주성을 함락한 가토 기요마사가,하동읍성에 들이닥친다.성벽이 무너지고 관아가 불탄다.그럼에도 백성들은 성을 버리지도 흩어지지도 않았다.불탄 집터에서 다시 삶을 찾았고,그 힘으로 읍성을 되살렸다.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을 맞던 그 마음처럼,그들이 성터를 지켜낸 것이다.
전란이 끝난 17세기 초,무너진 성벽을 보수하고 관아를 다시 짓는다.성은 더 넓어져 둘레가 1.4km다.읍성이 섬진강 관문의 위용을 되찾는다.18세기 들어 행정 중심을 지금의 하동읍으로 옮겨온다.왜구 침탈이 잦아들고 발달한 수운이 직접적 요인이다.넓은 강과 기름진 평야를 낀 입지를 찾아서다.
그로부터 하동읍성은 천천히 세력이 약해져 수십 민가만 성을 지킨다.금오산이 드리운 긴 그림자와 함께다.그랬어도 성은 듬직했고,주교천은 섬진강으로 흘러 바다로 나아갔다.하동읍성은 단지 돌로 쌓은 성이 아니라,백성의 손과 마음으로 세워진 삶의 성채였다.
섬진강 길목으로
세월이 흘러 세상이 달라졌다.강과 바다가 전쟁이 아닌 삶의 현장으로 거듭났다.드넓은 섬진강 하류와 남해안에 조운선과 교역선이 유유히 떠다녔다.
성곽보다 길로 사람이 모여들었다.시장이다.섬진강 따라 발길이 빈번해지니,길이 넓어졌다.강을 건너는 나루가 번성하면서 하동의 경제 중심도 서서히 새 읍으로 옮겨갔다.섬진강이 바빠진다.지리산 자락을 병풍 삼은 새 읍은 홍수 피해는 적고 교통은 편리했다.평야도 제법 넓다.성벽보다 발걸음이었고,새 읍으로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 사이,금오산 뒤 옛 읍성은 점차 소소해진다.군데군데 성벽이 허물어져 쇠락한다.성문 자리에 밭이 생기고,봉화가 오르던 산정이 비워진다.조선의 세월이 저물자,일제의 깃발이 산하를 점령한다.남았던 읍성마저 주춧돌과 군사용으로 흩어진다.하동읍성은 그렇게 시간의 뒤로 밀려나,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성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기억은 물론이고 성안 마을도 온전했다.한때 30여 호의 민가가 있었다.성안 사람들이 돌 하나,흙 한 줌까지 애처롭게 지켜낸 것이다.1960년대 하동읍성이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이 부득이 성 밖으로 이전해야만 했다.
남문을 비롯한 일부 구간 복원으로 옛 읍성의 윤곽이 조금 드러났다.그럼에도 허물어져 돌무더기로 남은 옛 성벽이 더 정감 간다.폐허에 가까운 성벽에 시간이라는 작가가 엿보여서다.이 터가 마지막까지 보듬은 가느다란 생명력이다.읍성과 동갑으로 보이는 우람한 고목도 그대로다.
옛 읍성이 더는 하동의 중심이 아니다.그러니 하동의 정신과 정체성은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이제 성 앞에 두어 채 남은 민가만이,읍성이 한 시절 복닥거리며 살았던 기억을 속닥인다.바람이 보드랍게 그 기억을 어루만진다.아이들이 웃으며 성벽 위를 걷고,연인들이 그 길을 따라 앞날을 이야기한다.
섬진강의 시간 위에 선 고장
오늘의 하동은 여전히 지리산과 섬진강의 고장이다.곳곳에 벌판이 편편하고 골마다 녹차밭과 송림이 짙푸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을 맞아 이 골짜기는 다시 한번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외적이 아니었다.우리끼리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고 총을 겨누었다.전쟁은 무참했다.이제 이념의 담벼락이 아니었다.죽고 죽인 원한으로 또 다른 총구를 들이댔다.전쟁이 아득해졌다 해도 그 쓰린 상흔까지 씻겨나갔을까?
악양과 화개장터는 샘솟는 이야기 보따리다.하동과 지리산을 따로 떼어 말할 수는 없다.악양 최 부자 땅에 얽힌 계급과 삶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하동 역시 강제된 근대화에 맞서다,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고향을 버렸다.
어느샌가 지역 갈등이 동서를 갈라쳤다.그랬어도 하동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영·호남을 잇는 가교로 자리매김했다.강을 사이로 광양과 구례가 하동의 5일 장을 공유하고,서로 다른 풍토와 말투에도 삶을 섞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이곳에서 만나 밥을 나누고 술을 마시며 황소를 사고팔고 사돈을 맺는다.짙푸른 섬진강 물줄기처럼 하동은 그렇게 화합의 상징으로 남았다.
그 곁에 이젠 발길마저 뜸한 하동읍성이 소슬하다.시간이 성을 비워냈다.그럼에도 절대 잊은 건 아니다.이곳은 전장 터였다.서로 명줄을 기댄 공생의 공간이었다.허물어진 옛 성벽 위를 걷다 보면,멀리 지리산 자락이 아스라이 다가든다.
시간이 그렇게 하동읍성을 품었다.역사가 가한 상처와 성을 버리지 못한 백성의 온기처럼 돌이 햇살에 반짝인다.듬직한 금오산은 미동도 없고,소금 배 저어오던 주교천도 고현 들판을 말없이 흘러간다.흐르되 뒤돌아보지 않는 강물처럼,하동읍성은 그렇게 시간을 품어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