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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양징자 사단법인 희망씨앗기금 대표
송신도 할머니 등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지원
희망씨앗기금 통해 일본 젊은 세대에 역사 알려

양징자 희망씨앗기금 대표는 1992년부터 2017년 송 할머니가 별세하기까지 그의 여정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일본군'위안부'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투쟁했다.ⓒ손상민 사진기자
양징자 희망씨앗기금 대표는 1992년부터 2017년 송 할머니가 별세하기까지 그의 여정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일본군'위안부'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투쟁했다.ⓒ손상민 사진기자


"재판에서는 졌을지 몰라도 제 마음만은 지지 않았습니다!" 

1993년 3월 재일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송신도 할머니(1922~2017년)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다.10년간 법적 투쟁을 이어갔지만 2003년 3월 일본 최고재판소가 상고 기각 판결을 내리면서 송 할머니는 패배했다. 하지만 송 할머니는 패소 판결에도 굴하지 않고 "마음만은 지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외쳐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위로를 전했다. 

1922년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난 송 할머니는 16세 때인 1938년 결혼하기 싫어 집을 나와 일하던 중 "전쟁터에 가서 나라를 위해 일하면 결혼하지 않아도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갔다.이후 중국 곳곳을 전전하며 7년 동안 일본군'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해방 후 "결혼해서 같이 살자"는 일본 군인의 꼬드김에 1946년 일본으로 넘어갔으나 버림당해 남은 일생을 일본 미야기현에서 보냈다. 

송 할머니의 사연은 신고전화 '위안부 110번'으로 익명의 제보자가 신고하면서 알려지게 됐다.이후 1993년 1월 송 할머니를 지원하기 위해 '재일 조선인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 발족됐으며 단체 활동가들은 법적 투쟁을 이어가는 10년간 그의 곁을 지켰다. 양징자 희망씨앗기금 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양 대표는 2017년 송 할머니가 별세하기까지 그의 여정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일본군'위안부'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투쟁했다. 

양 대표는 송 할머니가 별세한 후에도 오늘날까지 꾸준히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최근 한국을 방문한 양 대표는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송신도 할머니를 만나 인생이 바뀌었다.할머니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았다"며 "제가 살아 있는 한 온 힘을 다해 송 할머니를 통해 얻은 것들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송신도 할머니의 생전 모습.ⓒ연합뉴스
송신도 할머니의 생전 모습.ⓒ연합뉴스


윤정옥 대표 강연 계기로 위안부 문제 해결 활동 뛰어들어

양 대표가 일본군'위안부'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90년 12월 일본에서 개최된 윤정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초대 공동대표의 강연을 들으면서다.강연 이튿날 재일동포 여성들과 윤 대표의 간담회가 진행됐으며 양 대표는 이 자리에서 17명의 재일동포들과 함께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로 다짐한다.그리고 같은 해 '종군위안부문제우리여성네트워크'를 설립, 김학순 할머니를 초청해 증언 집회를 개최했다.김학순 할머니(1924~1997)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인물로,1991년 12월 일본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청구했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는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가 침묵을 깨고 피해자라는 것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줬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위안부 피해자 실상을 알리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당시 정대협의 '정신대 신고전화'처럼 일본에도 일본군'위안부' 신고전화가 설치됐는데 한 익명의 제보자가 송 할머니를 제보하면서 양 대표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송 할머니를 만나게 됐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송신도 할머니를 안다는 분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 전화를 받고 가와타 후미코 선생님(작가 겸 일본전쟁책임자료센터 전 대표이자 배봉기 할머니를 지원한 인물)이 할머니를 찾아갔어요.김학순 할머니의 뉴스를 보면서 관심을 갖고 계셔서 '아 왔구나'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가와타 선생님 말로는 '재판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어보면 '하고 싶다'고 했다가 '안 하고 싶다'고 말씀이 계속 바뀌셨다고 해요.같은 재일동포면 할머니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재판에 대한 속마음을 알고자 변호사와 할머니를 찾아갔죠."

하지만 상처로 닫혀 버린 송 할머니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저를 보자마자 '네가 조선인이냐.난 조선인이 싫어'라고 하셨어요. '매운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으시길래 좋아한다 했더니 매운 것만 먹으니 조선인은 다 머리가 나쁜 거야'라는 식이셨어요.일본인들에게 무시당한 것도 억울하지만 같은 조선인 동포들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오르셔서 동포들을 보면 자꾸 그런 말을 하셨던 거죠."

양징자 희망씨앗기금 대표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송신도 할머니를 만나 제 인생이 바뀌었다.할머니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았다"며 "제가 살아
양징자 희망씨앗기금 대표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송신도 할머니를 만나 제 인생이 바뀌었다.할머니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고,토토 경우의 수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았다"며 "제가 살아 있는 한 온 힘을 다해 송 할머니를 통해 얻은 것들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손상민 사진기자


2017년 송신도 할머니 별세 때까지 곁 지켜

사흘 동안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경청하던 양 대표의 모습을 보며 송 할머니의 마음의 문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송 할머니는 그 이후에도 여전히 재판 진행 의사를 번복했다.그러다 언론을 통해 재일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뉴스가 보도됐다.양 대표는 "할머니께 '기사가 오보인지 사실인지 발표해야 한다.이제는 정말 결정해야 한다'고 했더니 '하겠다'고 말씀하셨다.그래서 바로 다음 날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는 기자회견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993년 4월 소장을 내기 전날 할머니에게 가서 소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드렸어요.틀린 내용이 없는지 확인해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할머니께서 소장에 쓰지 않은 이야기들까지 하기 시작하셨죠.특히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어머니가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라고 하는 바람에 무서워서 도망갔다가 속아서 끌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어머니 탓을 하셨어요.흔히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인데 가해자보다도 자신의 곁에 있었던 사람을 더 원망하는 거죠.할머니가 너무 불쌍하고,어머니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 하는 것도 그렇고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받아주는 사람을 기다리고 계셨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그 마음이 저를 끝까지 가게 만든 것 같아요."

송 할머니를 지원하면서 양 대표의 삶도 변화했다.그는 "윤정옥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게 된 계기였지만 재일동포 여성들끼리 이야기하면서 위안부 문제라는 것이 나와도 관련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식민지 지배 때문에 '나라는 존재'(재일동포)가 일본에서 자랐기 때문이다.또 재일동포 사회도 남성중심 사회였다.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통해 재일동포로 살면서 겪은 어려움과 식민지 지배가 낳은 문제,여성 인권 문제를 호소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송 할머니를 봬며 위안부 문제를 통해 나의 문제를 호소하고,토토 경우의 수해결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 부끄러워졌다"며 "송 할머니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던 피해와 고난은 보통의 생활을 이어온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피해자들이 겪은 피해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 할머니가 왜 이런 행동과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어요.활동가들끼리 모여 '사실 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해석도 해보고,전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대한 책도 읽어봤는데 결국 알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송 할머니를 만나고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우리가 피해자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토토 경우의 수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운동이라는 것이었죠."

양징자 희망씨앗기금 대표가 올해 9월 한국어로 번역된 책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엮음·김민화 옮김·보더북)를 들고 있다.ⓒ손상민 사진기자
양징자 희망씨앗기금 대표가 올해 9월 한국어로 번역된 책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엮음·김민화 옮김·보더북)를 들고 있다.ⓒ손상민 사진기자


"일본 청년에 일본군'위안부' 문제 알린다"…2017년 희망씨앗기금 설립

비록 2003년 법적 싸움에서 패소했지만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송 할머니와 양 대표를 비롯한 '재일 조선인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활동가들의 10여 년에 걸친 투쟁은 2007년 책『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와 2009년 동명의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졌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올해 9월 18년 만에 한국어로도 출간됐다. '재일 조선인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은 송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송신도 할머니의 뜻을 이어가는 회'로 단체명을 바꾼 뒤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양 대표는 일본의 젊은 청년들에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바로 알리기 위해 2017년 희망씨앗기금이라는 단체도 설립했다.희망씨앗기금은 청년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주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하며 젊은 청년들에게 교류와 연대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이들은 수요시위에도 참석한다.당초 양 대표와 비슷한 나이대의 활동가들이 모여 만든 단체였지만 한국과 역사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이제는 청년 활동가들이 더 많은 단체가 됐다.양 대표는 "이제는 청년단체 대표 양징자라고 소개한다"고 웃었다.양 대표는 앞으로도 힘이 닿는 한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역사를 알린다는 계획이다. 

"위안부 피해 실태를 알리는 활동가가 될 줄 몰랐는데 송신도 할머니를 만나 인생이 바뀌었으니 아마 그게 제 운명이었던 거겠죠.할머니를 만나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이제는 젊은 친구들에게도 일을 어느 정도 맡기고 역사의 증언자로 남고 싶어요.할머니를 직접 뵙지 못한 세대가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계승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살아 있는 한 온 힘을 다해 송 할머니를 통해 얻은 것들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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