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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0일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국회에서 열린 쿠팡 사태 관련 연석 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photo 뉴스1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은 대형마트,그리고 당시 논란으로 떠오르던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주말에 의무휴업하게 하고,자정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제한했다.전통시장을 보호하면서 대형마트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휴식권을 보장한다는 것이 취지였다.하지만 경로의존성이 높은 법률 규제가 10년 이상 지속되다 보니 유통산업의 사양세를 가속화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특히 그 빈틈으로 쿠팡이라는 초거대 유통 독점기업이 탄생했고,쿠팡이 유통시장 일자리를 진공청소기처럼 흡수하며 노동자들의 일자리 선택권이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통산업의 대세는 이커머스로 옮겨갔고,노동 생태계는 유연노동과 플랫폼의 등장으로 복잡다단해졌다.이 가운데 '마트 대 전통시장' '마트 사측 대 임금노동자'라는 프레임을 통한 규제가 노동자 측에 오히려 악영향만 끼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마트 무너지면 누가 피해를 입나
2024년 기준 쿠팡의 국내 유통 매출은 약 36조원.이마트,롯데쇼핑,홈플러스 등 유통 3사의 매출(약 25조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쿠팡이 마트 3사를 앞서기 시작한 2023년은 '로켓배송' 도입과 막대한 물류 투자 이후 처음 흑자를 기록한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쿠팡은 대형마트 규제가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2014년 로켓배송을 시작,매 분기 수억 달러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다 2022년 3분기에 흑자로 돌아섰다.그러는 동안 코로나19까지 얻어맞은 대형마트는 감원을 거듭했다.마트 3사에서 일하던 임직원은 2019년 7만2653명에서 2024년 말 5만9942명까지 17.5% 줄었다.종사자 수의 감소세가 점포 감소세보다 빠른 편이다.2016년 409개로 정점을 찍었던 마트 3사의 점포 수는 2024년 말 369개까지 줄었다.
유통 일자리는 쿠팡으로 흡수되는 추세다.2024년 11월 쿠팡 자체 발표에 따르면,쿠팡이 국내에서 창출하고 있는 일자리는 8만개에 달한다.그러나 물류센터와 배송으로 일자리를 흡수한 쿠팡 고용의 질은 좋다고 보기 어렵다.마트 캐셔는 비정규직일지언정 최소한 계약직이었지만,쿠팡 고용의 상당수는 (무늬만) 프리랜서다.
지난해 연말 새벽배송 논쟁 국면에서 주목받은 칼럼니스트 이완 작가는 "규제 만능주의가 노동자끼리의 경쟁을 심화시킨 상황"이라고 짚었다.새벽배송 일자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게 사실이라 해도,그런 일자리로 사람들이 왜 몰리냐는 것이다.쿠팡과 경쟁할 만한 대형마트가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고,노동자가 '더 좋은 일자리'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다.새벽배송 논쟁도 대형마트 휴무도 노동권 보장이 명분이었지만,일자리 경쟁이 심할수록 법률을 통한 해소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보가 만든 '정부실패'의 사례다.일단 의무 휴업이 있다고 해서 다 쉬는 게 아니다.이를테면 내 가족들은 대부분 코스트코에 다닌다.특히 동생이 매장에서 냉동식품을 관리하는데,휴일에도 출근해야 한다.정기적으로 쉬는 것은 본사의 사무직뿐이다.오히려 더 적은 사람들이 많은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지금 유통 3사는 계속 축소 일로를 걷고 있는데,이대로 놔두면 특히 중년 여성들이 갈 곳이 없어진다."
사실 유통 대기업은 진입장벽이 낮고 최저임금은 보장하는 저숙련 일자리를 대량으로 창출해 왔다.비교적 교육 기회가 적고 경력이 단절됐던 중년 여성들의 노동 공급을 흡수했던 것이 마트다.쿠팡으로 옮겨간 일자리는 대부분 물류와 배송인데,젊은 남성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육체노동이다.대부분 임시직이라는 것도 문제다.물론 노동자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오는' 일이라는 사실이 청년에게는 매력으로 꼽히기도 하지만,다른 경력을 생각하기 어려운 중년의 경우라면 문제가 다르다.
경기도 수원의 한 대형마트에서 마트 캐셔로 일하다 코로나 당시 퇴직한 A(53)씨를 만났다.해당 매장은 A씨가 퇴직한 뒤인 2024년 말 폐점했다."남아있던 동료들이나 다른 마트에서 일하는 아줌마들 말을 들어보면,처음에는 무인 계산대가 생기면서 캐셔들을 무인매장 안내원이나 고객만족센터 등으로 보내더라는 거다.그런데 그다음에는 점포 자체가 줄어드니까 재고관리 같은 안 좋은 부서로 보냈었다.부당해고로 싸운 사람은 얼마 안 되고,나간 사람은 실업수당 받다가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2024년 12월 이마트는 팀장·점장급 관리직 노동자 11명을 상품 진열과 정리정돈처럼 파트타이머가 하던 일로 보직을 변경하며 다른 점포로 전보했는데,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이마트는 수년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했다.같은 해 3월엔 근속 15년 이상이자 과장급 이상 노동자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12월에는 대상 범위를 대리 이하 근속 10년 이상까지 확대했다.
이 작가는 "결국 경제 구조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규제가 일원화되어 있으니 이렇게 구체적인 이해충돌이 전혀 해결이 되지 않는다.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방향이 맞는다.북유럽에서도 정부 단위의 단일화된 규제는 많지 않다.대신 노사 간 단체협약을 법으로 보장해주는 형식이 많다.독일이 얼마 전까지 최저임금도 없었던 것은 그런 까닭이다."
2014년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에서 여성 캐셔들이 고객 응대를 하고 있다.유통업계는 이처럼 중년 여성들의 저숙련 일자리를 창출해 왔지만,유통 시장이 변화하며 이후 10년 넘게 감원을 거듭했다.photo 뉴스1 결국 노동현장 납득시켜야
전국이마트노동조합(이마트노조)이 지난해 12월 23일 성명을 냈다.한국노총 소속으로 7000명가량의 조합원을 보유한 이마트노조는 이마트의 대표 교섭단체다.개인정보 유출 이후 '강짜'로 일관하는 쿠팡을 키운 것은 사실상 대형마트 영업정지 및 새벽영업 금지를 비롯한 유통산업발전법이라는 것이 골자다.제목은 '괴물은 누가 키웠을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쿠팡의 독보적 유통 생태계를 만든 게 누구일까?2011년 도입된 레거시 리테일 오프라인 대형마트 규제가 소비자 입장이 반영되었는지,그로 인해 누가 혜택을 보았는지,도입 취지대로 효과가 나왔는지 의문이다.정부에서 사양산업이자 한계산업을 13년간 이렇게 규제로 일관한 업종이 있을까?그 사이 마트 노동자는 1만명 가까이 사라졌다.폐점이 늘어나는데 어찌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투쟁노선이 비교적 온건한 한국노총 소속 조직이라지만,노동계에서 이처럼 유통업 규제를 철폐하자고 공개적으로 나선 것은 처음이다.이마트노조는 윤석열 정부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나선 2022년만 해도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던 조직이었다.
물론 이마트노조의 성명 발표 이후 민주노총의 반박도 나왔다.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은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쿠팡을 낳았다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며,진짜 원인은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제대로 못한 데 있다고 했다.이들은 "(이마트 노조의) 성명은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휴식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외면한 채,사용자와 자본의 논리를 그대로 옮겨 적은 주장에 불과하다"며 "문제의 핵심은 쿠팡이라는 초대형 플랫폼 기업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한 정부의 실패"라고 반박했다.
원인을 어느 쪽에서 찾든 노동자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사실 지난 '새벽배송 논쟁'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민주당이 주도하는 '택배 사회적 대화'에 쿠팡노조는 물론 최대 규모의 택배노조도 참여하지 못했다.보다 못한 국회 입법조사처가 "이들 목소리가 사회적 대화 구조 속에서 소외될 경우 사회적 합의 이후에도 현장 수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을 정도다.정진영 쿠팡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8일 개혁신당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교각살우'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고 발언했다.장기불황에 고품질 일자리는 없는 상황에서 새벽배송을 규제하는 것은 일자리를 없애는 셈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계에서는 노동자들 스스로가 '더 일하고 싶다'고 호소하는 사례가 적잖이 벌어지고 있다.지난해 초에는 레미콘 믹서트럭 운전자 노조가 8·5제(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근무) 룰을 폐기했다.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며 일감이 부족해진 여파다.
한석호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은 "물론 노동자들이 힘들지 않도록 쿠팡이 변해야 한다"면서도 그 방식을 세심하게 고민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지금 쿠팡을 대체할 수 있는 데가 없지 않나.배송기사가 갈 수 있는 다른 기업이 떠올라야 문제가 풀린다.탈팡 운동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그래서다.그러면서 유럽처럼 노동자에게 휴식을 강제로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이를테면 지금 새벽배송도 운행 시간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으니,4시간 운행하면 1시간 강제휴식하는 룰을 만들 수도 있을 거다.물론 그 휴식시간 비용을 산정해주면 소비자도 이를 분담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탈팡'은 무의미
한 총장의 말대로 '탈팡'은 현재로서 무의미할 것으로 보인다.JP모건이 지난 1월 2일 보고서를 통해 "쿠팡이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고,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대해 덜 민감해 보인다"고 언급했을 정도다.점유율과 이용자 수를 떠나,소비자들의 실제 쿠팡 의존도는 상상 이상이다.온라인 PR업체 챌린저스가 지난해 9월 8일부터 이틀간 '식품을 온라인에서 구매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 28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쿠팡은 모든 품목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구매 채널이었다.응답자의 45%가 신선식품을 쿠팡에서 주로 구매한다고 답했다.
이용자의 충성도도 높다.챌린저스가 같은 해 11월 27일부터 12월 1일까지 쿠팡 앱 이용 경험이 있는 소비자 5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ton 카지노69.6%가 구독료를 내는 '와우 회원'이었고,73%가 쿠팡을 주 1회 이상 이용했다.주 5회 이상 이용하는 비율은 27.4%나 됐다.쿠팡을 이용하는 이유로 가장 먼저 꼽힌 것은 역시 '배송이 빨라서(90.3%,중복 응답)'였고,가장 많이 구매하는 것은 식품·신선식품(77.4%,중복 응답)'이었다.식품은 그동안 오프라인 마트의 비교우위로 꼽히던 영역이다.
그러나 정부가 정책 기조를 바꿀 기색은 없어 보인다.국회는 지난해 11월 13일 본회의를 열고 2012년 개정한 유통산업발전법의 일몰 기한을 오는 2029년 11월까지 4년 더 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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