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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민이 소개하는 소설 '할매' 읽는 법] 죽음이라는 주인공(이전 기사 : 새 한 마리가 되어 읽는 책,첫 문장을 곱씹어보세요)
인간이 아닌 나무가,600살 먹은 나무가 주인공이라고 했다.생명이 주인공이라고 했다.흰 점박이,첫째 마도요,몽각,개동이,자근연이,배동수 등이 나고 자라고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자기를 닮은 새로운 개체를 낳아 기르려고 또 아등바등하는 모습은 어제와 오늘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
너나할 것 없이 치열했다.간절하지 않은 순간은 하나도 없지만 내게는 하루살이의 한순간이 가장 뜨겁고 열렬했다.3년을 애벌레로 지내왔던 하루살이에게 남은 시간은 오로지 번식을 위한 것이었다.먹을 시간도,먹을 필요도 없으니 먹을 입이 없었다.짝을 찾아 교미하고 알 낳는 것이 하루살이의 하루짜리 삶이었다.번식을 위한 교미는 절대절명의 위험 속 찰나를 포착해야 했다.애벌레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자기를 잡아먹으려 달려들어도,some 토토그 순간 모든 경계와 방어와 공격의 태세를 내려놓고 무방비에 이르러야 한다.온 생명을 건 도박이고 기적의 찰나이다.
순환의 고리
"수컷 하루살이는 암컷의 몸통을 앞발로 잡은 채로 날개를 떨어서 비행을 도와주었다.두 날벌레는 팽나무 가지에 내려앉았고 서로를 그러안았다.팔다리와 더듬이로 서로의 얼굴과 몸통과 날개를 만졌다.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 <할매> 41쪽
교미를 마친 수컷 하루살이는 그대로 힘이 빠져 허공에 떠도는 것도 잠깐,잠자리의 먹이가 된다.암컷 하루살이는 간신히 돌 아래에서 숨을 골랐다가 물가로 기어가 알을 낳고 역시 힘이 빠져 개미의 먹이가 된다.이렇게 생명은 죽음에서 탄생으로,순환의 고리를 이어간다.하루살이가 숨을 골랐던 별돌은 지구만큼 사십오억 살의 나이를 먹은 유성이었다.그 오래된 긴 시간의 무게만큼이나 하루살이의 생 역시 무겁고 귀한 것이었다.
그렇게 죽음은 <할매>의 전면에 자리하고 있다.마음을 주었던 주인공들이 수시로 죽음을 맞닥뜨린다.첫 주인공 개똥지빠귀 '흰 점박이'가 '개암이 날개'와 짝을 지어 새끼를 낳고 사는 모양새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독자는 그의 느닷없는 죽음에 당황한다.그가 먹었던 뱃속의 팽나무 열매가 그 죽고 썩은 몸을 양분 삼아 씩씩하게 발아하는 과정을 보면서 '진짜 주인공'인 팽나무의 탄생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납득해보지만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막기 힘들다.
체온이 떨어진 개똥지빠귀는 숨이 끊어졌다.
- <할매> 30쪽
개똥지빠귀는 '힘이 빠져버려' '가만히 엎드려' '숨이 끊어지고' '썩어갔다'.그리고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극적인 감정의 분출이 없다.자연의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개똥지빠귀도 죽을 뿐이다.그러나 몇 줄에 걸친 섬세하고 정제된 문장에는 공들여 만나왔던 첫 번째 주인공을 보내는 작가의 통곡 같은 이별이 숨어있다.조문객이 떠난 빈 장례식장에서 비로소 차오르는 슬픔 같은 것을 단어 속에 꽁꽁 숨겨두었다.
작가 역시 우리처럼 죽음 앞에 태연할 수 없겠지만 생명이라는 주인공의 세계에 죽음이 없을 수 없다.죽음의 대척점은 생명이 아닌 탄생에 있다.생명은 탄생과 죽음을 모두 품고 있다.흰점박이의 죽음은 팽나무를 위한 희생이 아닌 한 마리 개똥지빠귀가 감당해야 할 생명의 과정이었다.팽나무는 나무라는 특성으로 차가운 계절마다 죽음을 겪고 나이테라는 흔적을 제 안에 켜켜이 쌓아간다.
생합들이 펄 위로 기어 나와 갯벌을 붉은색으로 덮어 놓았다.초여름 날씨에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갯벌에는 소금꽃이 하얗게 피었다.(.) 생합들은 바닷물을 찾아 갯벌을 헤대가 지쳐서 천천히 말라 죽어갔다.
- <할매> 208쪽
<할매> 안에도 죽음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다.하나의 죽음은 앞선 죽음을 다시 부른다.개똥지빠귀 흰 점박이의 죽음,첫째 마도요의 죽음,승려 몽각,서학 천주교신자,동학 농민운동가,그리고 갯벌에 펼쳐진 조개의 죽음.방조제로 물길이 끊겼지만 조개는 모래 속에 숨어서 수천 년 그러했듯이 바닷물을 기다린다.
타닥타닥 바닥을 촉촉하게 적시는 소리에 의심을 품지 않고 모래 위로 힘겹게 올라왔지만,그것은 염분을 품지 않은 빗물이었다.조개는 그대로 벌건 속살을 내벌린 채 그 자리에서 죽어갔다.몰살이었다.흰빛과 붉은빛의 죽음은 백여 년 전 한 자리에서 몰살당한 동학 농민들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이들의 죽음은 무엇인가.새까맣게 몰려들어 살을 헤집어 먹는 칠게 떼로 인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가 된 몽각의 죽음과 무엇이 다른가.
몽각의 죽음은 몸이 아프고 쇠진하여 쓰러진 생명의 과정이었다.칠게에게 몸을 내어준 것은 그의 깨달음이었다.몽각은 이름답게 긴 꿈에서 깨어나 깨달음을 얻고 속세를 벗어나 홀로 산다.그리고 다시 한번 잠에서 깨어나 내가 없음을 깨닫는다.없어진 것은 외로움이 빚어낸 타자였으며,스스로 나무와 조개와 다른 존재라고 믿게 했던 자아였다.깨달은 몽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만든 독살을 허물어낸다.그리고 말한다.
"지나치게 먹은 음식물의 찌꺼기가 오물이 되어 뱃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수많던 생각의 무게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 <할매> 82쪽
생활의 편익을 위해 만들었던 독살은 인간이 힘겹게 쌓아 올린 문명과 같았다.먹을 만큼 잡는 것이 아니라 장에 내다 팔 수 있을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게 했던 독살은 물고기를 속이는 함정이었다.생각이라는 것,근대의 이성과 합리성은 인간 세계를 풍요롭게 했으나 그만큼 인간의 자아를 비대하게 키워 놓았고 나 아닌 존재를 낯설고 적대적인 경계의 대상,타자로 삼게 했다.신분 사회라는 독살에 갇혀,some 토토새만금 방조제라는 독살에 갇혀 수많은 생명이 몰살 당한 현장은 몽각의 죽음과 달리 분노와 원한의 비애로 가득했다.
허탈한 마음을 붙잡은 것
개똥지빠귀 흰점박이의 이야기가 걷는 걸음은 구수한 옛 이야기를 풀어내는 할배의 것처럼 느릿하고 차분하다.팽나무 할매가 수백 년을 먹어가면서 이야기의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마치 생각의 무게가 점점 커지는 속도와 비슷하다.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지금까지의 지구의 시간을 24시간이라고 했을 때 인류의 출현은 23시 59분이라고 하지 않던가.글의 호흡도 점점 빨라진다.
그렇게 <할매>의 마지막까지 달려왔으나,some 토토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수라갯벌과 팽나무를 위한 빛나는 승리도 없고 희망의 메시지도 없어 보였다.당황하여 어정쩡했던 감정이 아쉬운 뒤끝으로 남을 수 있었다.그러나 생명의 주인공을 붙들고 다시 읽은 후에 깨달았다.나는 또 다른 주인공,죽음을 외면했었다.
<할매>에서 죽음은 저승사자 같은 깜짝 손님이 아니었다.생명이 품은 또 하나의 모습으로 작품의 전면에 자리한 죽음을 직면해야 했다.호흡하는 생명의 기적을 깨달은 현대의 몽각,배동수와 유방지거와 같은 인간들은 수라갯벌을 지키고 팽나무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겠지만,내가 그렇듯이 결국 언제고 숨을 거두고 죽음에 이를 것이다.그 또한 생명인 까닭이다.
허탈해지는 마음을 다시 붙드는 것은 다시 생명이었다.죽음이 있을지언정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끝까지 생명을 생명답게 살도록 치열해야 한다.탄생을 위해 끝까지 찰나를 붙들었던 하루살이 한 쌍이 있지 않았던가.나의 탄생 또한 그에 못지않은 기적이었으니 나는 나의 찰나를 위해 생명을 위해 치열할 것이다.눈을 뜨고 보자.오늘 하루가 참으로 아름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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