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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나타나고 있다.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오후 3시 30분 주간종가 대비 3.50원 오른 1483.60원을 기록했다.p
지난 12월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나타나고 있다.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오후 3시 30분 주간종가 대비 3.50원 오른 1483.60원을 기록했다.photo 뉴스1


2026년으로 넘어가는 한국 경제는 더딘 경제성장률에다 고(高)환율이라는 복병을 만나 고전하고 있다.2025년 7월부터 상승세를 탄 원·달러 환율은 10월에 1400원대로 올라섰고,12월 23일에는 1483.6원으로 치솟으면서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외환당국이 전방위 대응하고 있으나 별 효과가 없다.12월 한 달의 평균 환율은 과거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며,이대로라면 2026년에는 1500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특이한 점은 현재 주요 국가들의 통화 가운데 원화가 가장 약세를 보인다는 사실이다.환율이 오르면서 원자재를 비롯한 수입 물가가 인상되고 덩달아 소비자물가도 치솟고 있다.한국은행에 따르면 커피 수입 물가지수는 2020년을 100으로 할 때 지난 11월에는 달러 기준으로 307.12이지만 원화 기준으론 379.71이었다.소고기 수입 물가는 달러 기준으로 5년간 30% 올랐으나 원화 기준으로는 60.6% 상승,폭이 두 배에 이른다.

그러자 시중에서는 지금이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시기와 비슷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대한민국은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1997년 12월 3일 국제적 치욕을 당했다.바로 IMF와 '201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나라 빚이 1500억달러에 이르는데 우리가 가진 외화는 40억달러에도 못 미쳤다.그날부터 대한민국은 IMF가 관리했다.IMF는 부실기업 정리를 위한 고금리 정책,대대적인 금융기관 정리,골든아머 카지노정리해고를 골자로 하는 노동시장 유연화,극도의 재정 긴축 등을 요구했다.환율은 1달러당 1960원까지 폭등했다.결과적으로 한보·삼미·진로 등 수많은 기업들이 줄도산했고,주식시장은 대폭락했으며,실업자는 양산됐다.치욕의 순간이었다.

그러면 지금의 환율 상승을 두고 IMF 외환위기 당시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대다수 전문가들은 "그렇지는 않다"는 입장이고,정부도 "아니다"며 펄쩍 뛴다.기획재정부는 "지난 11월 말 기준으로 세계 9위 수준인 4307억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이 있으므로 당시와 같은 사태는 상상할 수 없다"면서 "특히 IMF 기준에 따라 유동성이 높아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만 외환보유액으로 포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내국인 해외투자가 고환율 원인?

환율이란 두 나라 돈의 교환 비율이면서 자기나라 돈의 대외가치를 뜻한다.한국은 광복 이후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했으나 여러 번 제도가 바뀌었다.1997년 IMF 외환위기로 환율이 2배 가까이 폭등하자 1997년 12월부터 지금의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채택했다.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것은 국내에 원화는 많이 풀어서 넘치는 반면,국내로 유입되는 달러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 일각에서는 환율 상승의 책임을 내국인의 해외투자에 돌리려고 한다.첫째,수출 대기업들이 지속적인 국내외 금리 격차에다 트럼프 2기 관세 부과에 따른 현지 공장 투자를 위해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둘째,국민연금이 운용 자산 1361조원 가운데 주식·채권·부동산을 포함하여 57%(780조원)나 해외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셋째,미국 증시에 직접 투자하는 '서학(西學)개미'가 급속도로 늘었으며 원화 가치가 하락하자 원화를 환전해 해외채권 ETF(상장지수펀드)나 달러예금 등에도 투자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7대 수출기업들을 불러모아 "외국에서 정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투자할 계획도 없는데 과도하게 달러를 유보하면 '나중에 환차익(換差益)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윽박지른다거나,국민연금의 해외투자 비중을 조절한다거나,또는 서학개미에게 중과세하겠다는 자세는 너무도 궁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물론 정부도 무리한 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여지는 남겨 두었다.하준경 대통령실 경제성장수석은 지난 12월 21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원화 약세 심리를 부추기는 사람과 이런 상황을 이용해 돈을 벌어보자는 사람들이 있지만,정부가 수수방관할 것이란 생각은 오판"이라며 "과도한 환율 쏠림이 지속되면 대미(對美) 투자의 시기와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12월 24일 '서학개미'들이 국내로 복귀하여 장기투자하면 양도세를 1년간 면제하겠다고 발표했지만,과연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는 의문이다.

저성장 고착화가 더 위험

전문가들은 최근의 환율 상승을 놓고 '1997년의 IMF 금융위기가 다시 오는가'라는 우려보다는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것 아니냐'는 이슈가 더 걱정스럽다고 한다.무엇보다 방만한 재정을 우려한다.최근 3년 동안 금리인하와 동결로 시중에 풀린 돈의 양,즉 통화량(M2) 증가율은 20% 이상이다.3% 선인 미국에 비해 7배나 많은 돈이 빠른 속도로 풀려 대출도 늘고 환율도 올랐다.현재 시중에 풀린 통화량은 역대 최고치인 4470조원에 이른다.2026년 정부 예산은 2025년보다 8.1% 증가한 727조9000억원으로 역대 최고 슈퍼 예산이다.풀린 돈의 상당수는 물가를 자극하는 동시에,대체로 가진 자들에 의해 운용되면서 부동산 시장 등으로 흘러가고 있고,부의 양극화 현상은 심화된다.따라서 고환율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히 금융 테크닉을 동원할 것이 아니라,근본적으로 달러가 알아서 찾아오도록 우리나라를 기업하기 좋고 투자하기에 매력적인 나라로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경제는 부진하다.2025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3.2%이고 미국도 1.8%에 이르지만,한국은 1.0%로 저조하다.한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하락세로 돌아섰다.2025년 1~9월 누적 외국인 직접투자는 206억7000만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17.9% 감소했다.갈수록 감소 폭이 커지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다.특히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안)을 비롯한 사실상의 반(反)기업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기업하기 힘들게 만드는 법규가 늘어나면 달러가 한국에 들어오기는 더욱 힘들어진다.주한외국상공회의소 회장단이 노란봉투법 등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지만,집권층은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사업장에서 사고 하나만 나도 최고경영자가 책임을 져야 하고,단축된 근로시간을 유연성 없이 강제로 지키겠다는 나라에 도대체 누가 투자하겠는가.그뿐인가.우리는 미국 트럼프 정부와의 관세협상에 따라 매년 2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해야 한다.정부 말대로 상한선이라고 해도 부담은 적지 않다.기업들이 미국 조선업에 투자해야 하는 금액도 1500억달러에 달한다.이렇게 엄청난 달러 수요를 예상하여 벌써부터 달러 잠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형편에 정부는 "성장동력을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돈 뿌리는 일에 열심이다.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AI(인공지능)·반도체 등의 첨단산업에 5년간 1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한다.긍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지만,접근 방법이 모두 돈을 퍼붓겠다는 식이다.이 정도로 많은 돈이 풀리면 돈 가치는 더 떨어진다.현재도 2000조원에 이른 가계부채(대출+카드빚)가 있어,개인과 가계가 파산할 위험성이 크다.어쨌든 2026년에는 달러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만일 원·달러 환율이 계속 폭등해 우리나라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진짜로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500원에 육박하는 고환율에 대해 "전통적 금융위기는 아니지만 위기라 할 수 있고 걱정이 심하다"며 "성장 양극화 등을 생각할 때 환율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고환율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응책이 거론되고 있다.이미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과 '전략적 환헤지의 탄력적 대응을 위한 TF(태스크포스)'를 운영하기로 했다.환율이 1470원을 넘어선 시점부터 전략적 환헤지(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미리 환율을 고정하거나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겪고도 외환보유고 낮아

외환보유액을 더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김대영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환율 급등의 가장 큰 원인은 외환보유액의 절대적 부족인데 지난 10월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200억달러 수준으로 GDP(국내총생산)의 22%에 불과한 반면 대만은 77%,홍콩·스위스는 100% 이상의 외환을 비축하고 있다"면서 "대만은 충분한 외환보유고 덕분에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에도 금융 충격을 거의 받지 않은 반면,한국은 외환위기를 심하게 겪고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국제결제은행(BIS)이 "한국 경제의 규모와 수입 의존도를 고려할 때 적정 외환보유고 수준을 9200억달러로 가져가야 한다"고 조언했으니,지금보다 2배 이상 늘려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기준금리를 높여 환율을 떨궈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지금은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아 한국에서 돈을 빌려 미국에 투자하기 때문에 환율이 올라가는 것이므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다만 정부 입장에서는 금리 인상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데,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내수가 위축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를 다시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시장의 불안심리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뿐"이라고 말했다.통화스와프는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체결하는 계약으로,한국은행이 원화를 맡기고 Fed의 달러를 빌려 오는 것을 뜻한다.직접적인 달러 수혈로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어 '외환 방파제'이자 '외환 정맥주사'로 불린다.2008년에는 한·미 통화스와프 600억달러,한·일 통화스와프 700억달러가 동시 체결되어 우리 외환시장이 버티었다.

하지만 미국과는 4년 전 끝났고 일본과는 흐지부지 상태다.현재 미국은 비(非)기축통화인 원화의 글로벌 거래 비중이 작아 미국의 신용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데다 관세 협상과 이행에 우위를 점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에 부정적이라고 한다.일본과도 매끄럽지 못하다.우리의 경제외교력이 필요한 시점이다.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통화스와프는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에 주는 심리적 안정 효과가 크다"면서 "연장되지 않을 경우 고환율 국면에서 단기적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IMF와 다르지만 안전한 상황 아냐

무엇보다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다.IMF 외환위기 직전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해서 그렇지 펀더멘털은 좋아"라든가 "국민들이 해외여행하면서 달러를 조금 많이 썼지만,우리나라 경제가 그리 쉽게 흔들릴 것 같나"라며 과도한 자신감을 표출했다.당시 단기 외채(外債)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빠져나가는데도,골든아머 카지노정부와 금융당국은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라고 치부하며 안이하게 대처했다.이번 환율 급등이 그때와는 여러 가지로 다르다 해도 '모든 대형사고가 벌어지기 이전에 29번의 경미한 사고와 300번의 징후가 선행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을 잊으면 안 된다.결코 안전한 상황이 아니다.앞으로 정부는 각종 명목으로 국민에게 현금을 살포하는 포퓰리즘 버릇은 버리고 합리적이고 내실 있는 정책 대응을 해야 한다.신속한 산업구조 리모델링,유연한 노동시장,과감한 규제개혁을 하지 않으면 한국은 저성장의 늪에 길게 갇힐지도 모른다.이것이 고환율의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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