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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의 미래 의료인을 위한 책장죽음을 실패나 오류로 보는 현대 의학
소설 속 일리치의 “보내줘”라는 말에
죽음을 응시하는 의료인의 자리 사유
톨스토이는 인상적인 첫 문장으로 모두에게 알려진‘안나 카레니나,또는 그 깊이와 시선으로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애독되고 있는‘전쟁과 평화’로 유명합니다.상대적으로 덜 알려진‘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라는 중편 소설도 있지요.의료인문학 분야에서 애독서를 꼽자면 순위권 안에 드는 책입니다.
소설의 얼개는 단순합니다.관료이자 가장으로 내용 없는 삶을 살던 일리치라는 인물이 어느 날 집에서 허리를 찧게 되는데,이게 단순한 부상으로 끝나지 않고 점차 그를 위독한 상태로 몰고 갑니다.결국 자리를 보전하고 누운 그는 죽음의 공포로 떨다가,마지막 순간에 그로부터 벗어납니다.이렇게 써 놓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소설이지요.주인공이 병에 걸려서 삶에 대한 통찰을 얻지만,병을 이기지는 못하고 결국 세상을 떠나며 깨달음을 남긴다.비슷한 작품도 많은 내용이라,그저 대작가의 작품이라 그런가 보다,생각할 수도 있는 글입니다.
하지만 의료인문학 분야의 애독서인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요.중간중간에 나오는 탁월한 문장을 일단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예컨대 “죽음이 다른 어떤 일도 하지 못하도록 자꾸만 그를 끌어당기고 있다”라거나,“죽음은 그 어떤 것이라도 뚫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와 같이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문장들.또는 “우린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요.그러니 수고를 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라는,위안을 주는 농부 게라심의 말과 같은 것.
이것뿐이라면 아쉬움이 남겠지요.하지만‘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흥미를 끄는 이유는 그것이 삶이 아닌 죽음에 대한 통찰이라는 데에 있습니다.사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삶이나 질병이 그의 삶에 대해 가져온 변화를 다루는 데에는 게으릅니다.일리치는 그만그만한 인물이었으며 비록 판사로서 좋은 경력을 쌓았지만,외면적인 치장에만 충실했을 뿐 내면은 공허합니다.아픈 가운데 자신의 과거에 대한 깊은 성찰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소설 시작은 일리치가 죽은 뒤의 장례식을 다룹니다.즉,소설은 현재에서 시작해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적 흐름을 형성합니다.그리고 장례식에서 그가 죽어가면서 대단한 것을 남겼다거나,질병과 고통으로 인하여 그에게서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암시하는 인물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물론 이것은 다른 등장인물들의 내적 공허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일리치의 삶과 투병이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독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오로지 일리치의 내면,그리고 죽음과의 사투뿐입니다.그는 죽음을 부정하고,분노하고,타협하려 애씁니다.그러나 톨스토이가 이끄는 죽음의 여정은 퀴블러-로스의‘죽음 수용 5단계’와 같은 매끄러운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전환을 맞이합니다.우울과 수용의 단계 대신,예고 없이 그를 찾아오는 것은 실수지요.
소설은 뒤로 갈수록 짧아집니다.마치 죽음을 앞두고 점차 급박해지는 일리치의 생각을 글자 수로도 보여주지요.그리고 마지막 순간,그는 깨닫습니다.자기 삶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다는 걸요.하지만 새로운 깨달음 또한 얻습니다.“아직은 그걸 바로잡을 수 있다”라는 사실입니다.단,그는 자신이 바로잡을 수 있음을 알지만,무엇을 바로잡을 수 있는지는 모릅니다.“그리고 자문했다‘그게’뭐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은 일리치의 말실수입니다.그는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려고 합니다.“그는‘쁘로스찌’(용서해줘)라고 한마디 더” 덧붙이려 하지요.그러나,온라인 경마 방법힘이 없어서였는지 그는 다른 말을 합니다.“‘쁘로뿌스찌’(보내줘)라고 말하고 말았다.” 흥미로운 것은,이때 비로소 그에게 해답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그러자 돌연 모든 것이 환해지며 (…) 가족들이 모두 안쓰럽게 여겨지고 모두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신도 벗어나고 가족들도 다 벗어나게 해주어야 했다.”
무심코 지나가기 쉬운 이 말,“보내줘”를 저는 이 소설의 주제로 읽습니다.현대 의학이 귀담아들어야 할 중요한 외침이라고 생각해요‘용서’가 과거의 관계를 정리하고 사회적 부채를 청산하려는 등 삶을 해소하는 노력이라면‘보내줌’은 이제 그것이 종결에 도달했음에 대한 선언이자,삶에 대한 매임이 끝났을 때 찾아오는 해방감이 아닐까요.
저는 현대 의학이‘죽음의 침묵’을 강제하고 있다고 생각해요.오늘날 병원 공간은 환자가 “보내줘”라고 말할 기회를,해방을 선언할 권리를 박탈하지요.첨단 의학은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결말이나 완성으로 보지 않고,시스템의 오류이자 패배로 규정합니다.그래서 의학은 환자를 끝까지‘생존의 영역’에 묶어두려 합니다.튜브와 기계장치,그리고 수치로 환산된 생 징후는 환자에게 마치‘너는 아직 죽으면 안 돼,온라인 경마 방법너는 아직 치료해야 할 대상이야’라고 윽박지르는 것 같지요.환자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실패’로 규정하는 곳에서,죽음은 존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의학적으로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라는 선언과 함께 의료인의 역할이 끝난다고 착각합니다.치료가 불가능해지는 순간,의사는 뒤로 물러나고 성직자와 가족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하지만 톨스토이가 일리치의 입을 빌려 “보내줘”라고 외칠 때,그 외침은 바로 그 순간 옆에 서 있는 의료인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를 더 이상 고장 난 기계로 보지 말고,떠나는 인간으로 봐 달라.나를 당신의 의학적 성취나 실패의 증거로 삼지 말고,이 문을 통과하는 주체로 인정해 달라.”
환자의 죽음 앞에서 의료인의 역할은 일시 정지되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닙니다.오히려 그 순간,기술자로서의 의료인은 인간으로서의 의료인으로 변모합니다.심장과 호흡이 멈추는 것을 막는 역할 대신,그 멈춤을 함께 응시하고 목격하는 증인의 역할로 전환되는 것이지요.그것이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의료인으로서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준혁 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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