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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상반기에만 연쇄살인범 두 명이 활보했다.유영철이 검거된 후 경찰은 심리학 전공자 열여섯 명을 대한민국 최초의 특채 범죄분석관으로 뽑았다.

2004년 7월18일 유영철이 피해자의 사체를 유기한 서울 봉원사 인근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2004년 7월18일 유영철이 피해자의 사체를 유기한 서울 봉원사 인근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범죄는 시대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수년간 연쇄살인범은 나타나지 않았지만,이상 동기 범죄는 오히려 늘고 있다.2006년 경찰이 프로파일러를 처음으로 특별 채용한 이후 꼭 20년이 흘렀다.이들이 분석하는 한국 사회의 병리는 어떨까.앞으로 총 7회에 걸쳐 대한민국 1기 프로파일러 이야기를 싣는다.탐사보도에 강한 〈시사IN〉과 웹툰·웹소설 및 논픽션 기획사 에스판다스가 협업했다.축약된 버전의 이 기획 기사 전체 내용은 올 상반기에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신문에 실리는 온갖 강력사건은 빙산의 끝부분이다.그 아래 바닷속에는 인류의 원초적인 감정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2026년을 사는 사람들도 3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와 똑같은 이유로 서로를 죽인다.사랑해서,미워서,탐이 나서.그다음 남는 본능은 단 하나다.도망치는 것.

본능은 같아도 범죄 양상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인간의 활동 반경이 넓지 않았던 시대에는 범죄가 금세 탄로 났고,범인은 쉽게 잡혔다.증기기관과 내연기관이 발명되고 자동차,기차,비행기가 생기자 범인은 더 빠르게,더 멀리 도망쳤다.빈부격차가 커질수록 뒤처진 자들의 박탈감과 절망이 커졌다.이들은 자신의 가난과 불행을 탓할 대상을 찾았지만 사회나 구조,국가는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존재였다.대신 함께 사는 가족,친구,우연히 곁을 지나던 행인,창문을 잠그지 않고 잠에 든 사람들이 타깃이 됐다.

2000년대 초반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 계장이던 윤외출은‘검거’에서 한발 더 나아가‘예방’이 경찰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변하는 사회상을 예측하면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그가 생각하기에 다가올 미래의 범죄‘트렌드’는 연쇄 범죄였다.트리거가 많아지고 은폐하기 쉬워지면 연쇄 범죄는 늘 수밖에 없다.잡힐 때까지 계속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2000년 2월9일,권일용이 대한민국 최초의 범죄분석관(프로파일러)으로 임명됐다.경찰에서 프로파일링 업무를 맡는 유일한‘1인팀’이었다.곧 연쇄 범죄라는‘미래’는 현실이 됐다.윤외출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2004년 상반기에만 연쇄살인범 두 명,유영철과 정남규가 대한민국을 활보했다.

2004년 7월,유영철이 검거됐다.열한 명이 숨진 뒤에야 그의 오피스텔 화장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밝혀졌다.날벼락을 맞은 경찰청은 급박하게 돌아갔다.이듬해 1월14일에 열린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 후보자 청문회 회의록을 훑어보면‘유영철’이라는 이름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세 번 언급됐다.

대한민국 경찰은 국민에게 연쇄살인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에 준비돼 있다는 확신을 줘야 했다.허준영 경찰청장 후보자는 엽기 범죄,연쇄 범죄를 막기 위해 심리학 전공자 서른 명을 특별히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지휘부는 논의 끝에 경찰관이 심리학을 배우기보다 심리학을 배운 사람이 경찰관이 되는 게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권일용’서른 명을 갑자기 키워낼 수는 없었다.일단 1기는 그 절반인 열여섯 명을 뽑기로 결정됐다.심리학이나 사회학 석사 혹은 관련 업계에서 3년 이상 일한 경력자가 지원 대상이었고,석사 이상 특채인 만큼 순경 다음 계급인 경장을 주기로 했다.

과학수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다

당시 막 범죄심리사 1급 자격증을 딴 백승경은 경찰청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범죄심리사 1급 자격증을 처음 딴 세 명 중 한 명이었다.당시 백승경은 서울 송파경찰서와 서울분류심사원을 오가며 소년범을 면담하고 재범 가능성을 판단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그에게는 어렸을 때 집에 들었던 도둑을 잡지 못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아직 국내에는‘프로파일링’이라는 단어 자체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지만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건 백승경만이 아니었다.마찬가지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김윤희는 미국 드라마 〈X파일〉을 좋아해서 남몰래‘FBI 되는 법’을 검색해본 적도 있었다.“그거 아세요?FBI가 되려면 미국 국적이어야 한대요.” 김윤희가 웃으며 말했다.그도 범죄심리사 자격증 수업을 들은 적 있었다.

특채 소식은 노량진 학원가에도 빠르게 퍼졌다.공무원 학원 게시판마다 채용 공고문이 붙었다.심리학을 전공하고 TV 시청률을 조사하는 한 리서치 회사에서 3년간 일한 경력이 있는 최대호 역시 모든 조건을 충족했다.그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법무부 분류심사직을 준비하기 시작한 건 회사 월급이 낮아서도,처우가 나빠서도 아니었다.일에 별다른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그나마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이 재소자의 성향과 위험도를 파악하고 평가하는 분류심사직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범죄심리학이라니,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죠.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길이니까.”

구술 면접 시험장에는 휴가를 내고 시험을 보러 온 경찰관도 있었다.2003년 일반 공채에 합격해 대구에서 순경으로 근무하던 추창우는 경찰 내부 게시판에 뜬 채용 공고를 봤다.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의 눈이 빛났다.“원래 통계를 좋아했어요.입직하기 전에 권일용 선배가 TV에 나오는 모습도 봤고요.그때 프로파일링이 새로운 선진 기법이라고 하기에‘우리나라도 분석적 틀을 통한 수사가 필요하겠구나,매력적이다’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나요.” 그는 다시 지원서를 썼다.중앙경찰학교를 두 번 입학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5년 1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이 허준영 신임 경찰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을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2005년 1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이 허준영 신임 경찰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을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2005년 7월,중앙경찰학교 184기에 특채 1기 프로파일러 열여섯 명이 입학했다.고선영,고준채,카지노 게임 사이트김경옥,김성환,김윤희,배상훈,백승경,오정은,유지현,카지노 게임 사이트이미연,이진숙,정세민,정혜정,조정혜,최대호,추창우.2006년 1월5일,건강 문제로 중도 퇴소한 배상훈을 제외한 열다섯 명이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했다

본청은 이들이 주말이 지난 월요일부터 곧바로 출근하기를 원했다.보통 중앙경찰학교 졸업 후 임관까지 짧게는 몇 주,길게는 몇 달이 걸리는 걸 고려하면 상당히 촉박한 일정이었다.그만큼 사회적으로 연쇄살인범에 대한 우려가 높았고,그만큼 경찰은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다.원래대로라면 1월9일 월요일부터 출근을 했어야 했지만 워낙 시간이 밭은 탓에 하루 미뤄졌다.

마침내 2006년 1월10일,대한민국 프로파일러 1기가 전국 시도 경찰청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대한민국 과학 수사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권일용이‘최초의 프로파일러’라면 이들은‘공채 1기 프로파일러’인 셈이다.베테랑 권일용이 형사로서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받아들였다면,갓 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심리학자로서 경찰이라는 조직을 받아들였다.이 차이가 때로 장점이 되기도,약점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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