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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봉쇄와 압박에 무너진 베들레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베들레헴은 평소에는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크리스마스만 다가오면 갑자기 뉴스의 주인공이 된다.지난 12월 6일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앞쪽에 있는 구유광장(Manger Square)에서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전쟁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대형트리 점등식이 열렸다.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339년 지었다는 예수탄생교회는 2012년 팔레스타인 유일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예수탄생교회는 입구가 높이 120㎝,너비 80㎝로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어 '겸손의 문(Door of Humility)'이라고 불린다.십자군 시대 무슬림들이 수레를 갖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그렇게 만들었다지만,지금은 누구나 아기 예수 앞에서 겸손하고 평화를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가 더 중요해졌다.드디어 붉은빛과 금빛 장식으로 꾸며진 대형 트리에 불이 켜지자 수천 명의 참석자들은 "평화의 빛이 새롭게 밝아졌다"고 외쳤다.베들레헴 거리 곳곳에 조명 장식이 설치되고 크리스마스 파티 광고 등이 내걸렸다.성탄 행사가 재개되면서 지난 2년간 텅 비어 있던 베들레헴 호텔들도 예약이 늘어났다고 좋아했다.
히브리어 '베이트 레헴'은 '집(베이트)'과 '빵(레헴)'의 결합이다.즉 베들레헴이란 빵집이란 뜻이다.이스라엘의 영웅인 다윗왕도 여기가 고향이고,구약성경 미가서 5장2절(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을 비롯한 성경 곳곳에는 베들레헴에서 메시아(헬라어로 그리스도)가 태어난다고 예언되어 있다.
사실 12월 25일은 예수의 탄생일이 아니라 그저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예수가 태어나던 밤에 목자들이 들판에서 양떼를 지켰다는 성경 구절을 감안하면,12월 25일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이스라엘의 우기(雨期)인 데다 기온이 꽤 내려가기 때문이다.그래서 봄이나 가을이라는 주장이 많다.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한 것은 로마다.350년 교황 율리우스 1세 또는 354년 리베리우스 교황 때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제정했다고 한다.기독교 공인 이전에 로마에서는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이란 신전을 지으면서 12월 25일을 태양절로 제정했는데,로마에서 기독교의 입지가 상승하자 그날을 예수 탄생일로 바꾸었다는 것.로마가톨릭 입장에서는 이교도의 풍습이나 축제를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이를 받아들여 기독교화(化)하는 전략을 택한 셈이다.켈트족의 삼하인 축제를 수용하여 핼러윈으로 변형한 것과 비슷하다.이 때문에 청교도들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가짜"라며 지속적으로 반대하기도 했다.하지만 12월 25일은 아름다운 겨울 이미지와 캐럴과 함께 급속도로 확산되었고,본 고장인 베들레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베들레헴은 요즘 크리스마스 한 시즌 장사로 1년을 먹고산다고 할 정도다.하지만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봉쇄와 압박은 관광산업으로 먹고사는 베들레헴 지역경제를 망가뜨렸다.마헤르 카나와티 베들레헴 시장은 "지난 2년간은 크리스마스도 일자리도 없는 침묵뿐이었고,우리는 관광으로 먹고사는데 관광이 제로(0)로 줄어들었다"며 "누군가는 이번 행사가 적절하지 않다고 할지 모르지만 크리스마스는 우리에게 희망의 빛이기에 멈춰서도 취소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형트리 점등식으로 얼핏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다가온 느낌이지만,어벤져 스 바카라실제로는 아직 가자지구 전쟁이 끝나지 않은데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다시 험악한 말을 주고받고 있다.이스라엘은 2곳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중에서 하마스가 통치해 온 가자지구(Gaza Strip)를 초토화한 데 이어,명목적으로는 PA(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에도 점차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면서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서안지구는 땅콩 모양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어벤져 스 바카라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 정도 떨어져 있는 베들레헴도 바로 서안지구에 속한다.
이스라엘,베들레헴 출입 통제
이스라엘 정부는 최근 서안지구에 설치한 19개 불법 전초기지를 합법화했다고 CNN이 지난 12월 14일 보도했다.전초기지란 서안지구에 들어간 유대인 정착민들이 정부의 사후 승인을 기대하며 무단으로 만든 간이주택을 가리킨다.국제법뿐 아니라 이스라엘 국내법으로도 불법이다.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사후에 이를 합법화하는 방식으로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해 왔다.서안지구 내 점령지를 넓히는 동시에,팔레스타인 도시들 간의 교통이나 교류를 차단하여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을 방해하겠다는 의도다.예루살렘과 붙어 있는 베들레헴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이스라엘은 베들레헴 전체를 콘크리트 분리장벽으로 꽁꽁 둘러싸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이스라엘은 테러 방지를 이유로 2002년부터 서안지구 경계에 8m 안팎의 높은 분리장벽을 세우기 시작했다.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려는 해외 성지순례객들은 높다란 분리장벽 사이에 있는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한국을 비롯한 동양인들은 금방 외모가 눈에 띄므로 통과하기가 크게 어렵진 않다.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기를 드나들기는 여간 까다롭지 않다.예수탄생교회의 경비원 모하메드 사베는 "(예루살렘 바로 북쪽에 있는 팔레스타인 도시인) 라말라의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검문소에 막혀 베들레헴에 오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유대인들은 세상의 '반(反)유대주의'에 대해서는 흥분하고 비난하지만,정작 자신들의 '반(反)기독교주의'에 대해서는 별반 언급이 없다.
베들레헴의 분리장벽은 이스라엘의 침공을 비난하는 세계 최대 낙서판이 되고 있다.분리장벽 바로 뒤에서는 이슬람 휴일인 금요일 낮이 되면 "빨리 뒤로 빠져라.곧 녹색 괴물(녹색 군복을 입은 이스라엘 군인을 의미)들이 총을 쏜다"는 외침이 종종 들린다.새총으로 돌멩이를 하늘에 쏘아 올리는 앳된 얼굴의 팔레스타인 소년들이 서로를 향해 외치며 '작전'을 펼친다.그러면 100m 떨어진 타워 옆 철문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나오고 팔레스타인 소년들은 분리장벽에 등을 바짝 갖다 대며 몸을 숨긴다.그 장벽에는 과거 이스라엘에 의해 숨진 팔레스타인 소년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가끔 과격한 시위가 벌어질 때는 폐타이어나 대형 쓰레기통에 상자를 넣고 불을 질러 이스라엘군 쪽으로 밀어내기도 한다.난민촌 출신의 팔레스타인 소년은 "이스라엘군은 우리에게 처음에는 최루탄,다음에 고무총,이후에는 실탄을 쏠 것"이라고 말했다.자신들이 투쟁한다고 이스라엘군이 물러나지 않으리라는 건 그들도 알고 있지만,그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베들레헴경찰서 입구에는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의 사진이 걸려 있다.아라파트의 테러 정신은 아직 베들레헴에도 살아 있다.지난 10월 29일 밤에는 이스라엘 경찰이 베들레헴 인근의 한 가정집을 급습해 여러 테러 조직에 사제 폭발물을 공급한 혐의로 16세 용의자를 체포했다.집에서 폭발물 여러 개가 발견됐다.그 소년은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이에 있는 '라헬(구약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아내이자 요셉의 어머니)의 무덤'에서 테러를 벌이려고 계획했다.
베들레헴 기독교 인구 감소
한편으로 베들레헴은 '기독교 구세주의 탄생지'라는 이유로 이슬람이 대부분인 팔레스타인 측의 냉대까지 받고 있다.'전 세계 크리스마스의 수도'이긴 하지만 기독교인 인구는 급감하고 있다.기독교인들이 떠난 베들레헴이 앞으로도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계속 기독교 성지로 남아있을지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유일한 주력산업인 관광업을 지탱해 줄 인구들이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서안지구 전체를 보면 당연히 무슬림이 압도적으로 많지만,그래도 베들레헴은 예수의 탄생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기독교인 숫자가 적지 않았다.하지만 최근 크게 감소하고 있다.이스라엘 싱크탱크인 예루살렘 안보 및 외교센터(JCFA)의 연구에 따르면,팔레스타인 전체로 보면 기독교인이 1922년에는 11%를 차지했으나 2024년에는 1%에 불과하다.베들레헴도 마찬가지다.1950년 베들레헴과 주변 마을은 기독교인 비율이 86%나 차지했으나,2017년 마지막 조사에 따르면 약 10%로 감소했다.보고서를 작성한 모리스 허시 중령과 티르자 쇼르 변호사는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 이스라엘 유대교인 간의 사소한 충돌이 집중적으로 보도되지만,실제로는 팔레스타인에서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갈등이 더 심각하다"면서 "기독교인들은 당국인 PA에다 '기독교인 혐오 사건'에 대해 보고하기를 꺼리는데,어벤져 스 바카라괜히 보고했다가 오히려 체포되거나 더 나쁜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9년 베들레헴의 마론파 교회가 파괴된 것과 같은 교회 모독 사건은 드문 일이 아니다.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극심한 압력과 위협에 직면하는데,기독교인들은 PA 경찰이 사실상 자신들을 방치하고 있다고 느낀다.이렇게 종교적·법적 차별로 인해 베들레헴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나 키프로스 등지로 떠나고 있다.
1990년부터 베들레헴에서 사역하고 있는 강태윤 선교사는 "그동안 관광이 끊기며 현지인들의 생계가 무너졌고 무슬림이 다수인 사회 속에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전쟁의 공포와 신앙적 소수자로서의 압박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강 선교사는 "팔레스타인 사람 모두가 하마스가 아니고 대부분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이웃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라고 강조했다.비록 올해 대형트리 점등식이 열리며 평화 분위기가 반짝하고는 있지만,베들레헴 경제의 핵심인 외국 관광객이 얼마나 찾아올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이스라엘이 서안지구에 대한 노골적인 점령정책을 진행하기 시작했으므로 언젠가 다시 큰 갈등이 벌어질 조짐이다.강대강(强對强)으로 부닥치는 현장에서 베들레헴의 평화와 번영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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