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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물유적] 조선의 시그니처 유물 국보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병,철화포도문 항아리

▲  국보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좌)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우) ⓒ 국가유산청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구하게 흐르는 역사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한 국가의 멸망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국가 탄생으로 이어지며 진보와 발전을 거듭했다.구 시대가 멸하고 새 시대가 열리면 기존의 낡은 제도와 규범은 타파되었고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질서와 가치가 자리 잡았다.특히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표현하는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예외 없이 새로운 사조(思潮)가 등장했다.

조선의 혼이 담긴 새로운 도자기의 탄생

서기 1392년.한 시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새 나라 조선(朝鮮)이 밝았다.그로부터 1년 후 조선 건국의 설계자이며 개국 공신인 삼봉 정도전(三峯 鄭道傳 1342~ 1398)은 태조 이성계에게 "한 시대가 일어나면 반드시 한 시대의 제작이 있습니다(故曰一代之興 必有一代之制作)"라고 아뢴다.

고려를 뒤엎고 새 시대를 열었으니 그동안 유지되었던 낡은 제도와 관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거였다.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와 달리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삼아 탄생한 조선은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대부(士大夫)들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했다.

▲  흰 눈처럼 순결한 국보 백자 유개 항아리.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순백자 항아리로 조선 선비들의 맑은 정신을 닮았다.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소장 ⓒ 국가유산청
새 시대를 향한 이들의 열망은 새 나라 조선의 문화·예술에도 많은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푸른 청자 시대가 끝나고 회색 분청사기와 하얀 백자의 시대가 열렸다.조선 선비들은 화려함보다는 그들의 순수하고 맑은 정신을 닮은 하얀 백자를 선호했다.

한편 고려의 멸망과 함께 전국으로 흩어졌던 도공들은 시대가 바뀌든 말든 옛 방식 그대로 도자기를 구웠으나 영롱한 비취색이 나오지 않았다.도자기 주원료인 흙과 물과 땔나무가 바뀌었고 국가에서 통제하던 품질관리 방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고심을 거듭하던 도공들은 도자기 표면을 하얀 흙으로 장식하기 시작했다.이렇게 탄생한 도자기를 '분으로 장식한 청자'라는 뜻으로 '분장회청사기' 또는 '분청사기'라 불렀다.15~16세기 조선 도공들은 시대를 넘고 색을 넘어 선배들의 청자를 새로운 백색 미감으로 재창조했다.

▲  국보 백자 병형 주전자.15세기 조선 초기 경기도 광주의 관요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 소장 ⓒ 국가유산청
이렇게 푸른 청자 시대는 가고 점차 나라가 안정되면서 분청사기를 거쳐 조선의 혼이 담긴 새로운 도자기 백자(白磁)가 탄생했다.이후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는 '관요(官窯)'가 경기도 광주에 설치되었고 백자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기술 발전으로 도자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했다.

조선백자는 시대에 따라 도자기 겉면에 어떤 색깔의 물감을 써서 무늬를 그렸는가에 따라 순(純)백자,청화(靑畫)백자,철화(鐵畫)백자,동화(銅畵)백자로 나뉘게 된다.조선 전기에 유행하던 순백의 백자는 도자기 표면에 아무런 무늬도 그리지 않은 것으로 백자 고유의 순수하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순백자 제조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여기에 그림을 더한 화려한 청화백자,철화백자,동화백자 등이 탄생한다.푸른색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는 이란산 코발트 안료(회청)를 중국에서 비싸게 수입해야 했기 때문에 매우 귀하게 여겼다.

▲  국보 백자 청화매죽문 유개항아리(좌)와 백자 청화매조죽문 유개항아리(우).15세기 조선 초기 작품이다.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국가유산청
▲  국보 백자 달항아리.조선 17세기 후기~18세기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한다.순백의 미와 균형감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백자의 독특하고 대표적인 형식이다.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국가유산청
16세기말 전쟁으로 인해 청화 안료의 수입이 어려워지자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흑갈색 산화철 안료를 사용한 '철화백자'와 붉은색 산화구리를 이용한 '동화백자'가 나오게 되었다.짙은 갈색이 특징인 철화백자는 17세기 조선 백자의 주요 경향으로 자리 잡는다.

전쟁이 끝나고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 시기인 영·정조 시대.정치와 경제는 안정되고 백성들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조선백자 황금시대가 열린다.이때 순백의 미와 균형감으로 그 모습이 마치 밤하늘의 둥근달을 연상시키는 일명 '달항아리'가 탄생한다.

흰 눈처럼 고결한 조선 선비를 닮은 청화백자에서 순백의 달항아리까지.조선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백자는 단순한 그릇을 넘어서 한 시대의 정신과 미의식이 담긴 우리의 고유한 문화유산이다.현재 우리는 370여 건의 국보를 보유하고 있다.그중 조선 백자가 18점을 차지하고 있다.이들 중에서 최고의 미감을 자랑하는 국보 중의 국보 2점을 감상해 보자.

국보가 된 '1원짜리 참기름병'

▲  국보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한 작품 안에 청화,철화,동화기법 등 조선백자의 모든 장식기법이 총망라되어 있는 명품 중의 명품이다 ⓒ 국가유산청
"유적이나 유물이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을 때 훨씬 더 친근해지고 잊히지 않는다.또한 그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진다."
이재명 정부 들어 새로 임명된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말이다.공감한다.명품이란 탄생할 때부터 명품이지만 여기에 이야기가 더해지면 작품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조선 백자 중에도 그런 명품들이 있다.

학처럼 하얗고 긴 목.달항아리처럼 풍만한 몸체와 낮은 굽.우윳빛이 나는 유백색 몸통.비스듬히 그려진 국화꽃과 가늘게 뻗어 나가는 세 줄기 푸른 난초 잎이 선명하다.양각 기법으로 처리한 국화 줄기와 잎은 짙은 갈색의 철화로 장식되었다.

붉은색이 감도는 국화꽃과 곤충들은 동화 또는 철화 안료를 사용했다.한 작품 안에 청화,철화,동화기법 등 조선 백자의 모든 장식기법이 총망라되어 있는 명품 중의 명품이다.

▲  무늬는 양각 기법으로 처리하였으며 난초는 청화,국화 줄기와 잎은 짙은 갈색의 철화로 벌과 나비는 철화 또는 동화로 채색하였다 ⓒ 국가유산청
높이 42.3㎝,아가리 지름 4.1㎝,밑 지름 13.3㎝.1997년 국보로 지정된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 병(白磁靑畵鐵彩銅彩草蟲蘭菊文甁)'이다.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이름이 매우 어렵다.한숨에 이어서 발음하기 조차 힘들다.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백자인데 푸른색 청화와 짙은 갈색의 철화,붉은색이 나는 동화(청화철채동채) 안료를 사용하여 풀,나비,벌,난초와 국화를 그린 병(초충난국문병)이라는 뜻이다.

조선 백자의 황금기인 18세기 전반에 경기도 광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아름다운 백자가 우리 곁에 오기까지 극적인 사연이 있다.때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경기도 팔당 인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면서 봄나물과 참기름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노 부부가 있었다.어느 날 할머니가 나물을 캐던 중 흰색 병을 발견했다.공교롭게도 할머니가 백자를 발견한 곳은 조선시대 왕실용 백자를 굽던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 가마터였다.

할머니는 산에서 주워 온 병에 직접 짠 참기름을 담아 중간 상인에게 1원에 팔았다.상인에게 참기름을 넘겨받은 광주리 장수 개성댁은 경성에 사는 일본인 단골 부부에게 가져갔다.참기름병이 조선백자임을 알아본 일본인 부부는 개성댁에게 병값으로 1원을 더 쳐서 5원을 줬다.

▲  국보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 국가유산청
골동품상이었던 일본인 남편은 이 백자를 다른 골동품상에게 60원에 팔았다.백자는 돌고 돌아 모리 고이치(森悟一)라는 일본인 수집가에게 3천 원에 팔렸다.1936년 모리 고이치가 죽고 백자는 경매에 나왔다.이때 우리 문화재 독립운동가 간송 전형필 선생이 나섰다.

우리의 소중한 보물을 일본에 넘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상대는 일본뿐만 아니라 홍콩,미국에도 지부를 둔 세계적 골동품회사 야마나카 상회(山中商會)였다.500원에 시작된 경매가는 순식간에 7천 원으로 뛰어올랐다."9천 원!" "1만 원!" 피 말리는 경쟁 끝에 최종 낙찰가는 1만 4580원이었다.

당시 서울의 기와집 15채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으로 최후의 승자는 간송 전형필이었다.경성미술 구락부 경매 사상 최고 낙찰가를 기록한 이 백자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1997년 국보로 승격되어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일본인이 맡기고 간 '백자 철화 포도문 항아리'

▲  국보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조선 백자의 황금시대인 18세기 영조 때 금사리 가마에서 빚어낸 것으로 추정한다.이화여대 박물관 소장 ⓒ 국가유산청
터질 듯 풍만한 어깨.그 아래로 급격히 좁아지면서 길게 쭉 뻗어내리는 유려한 하체의 곡선.엷은 푸른색을 머금은 유백색 몸체 상단에 두 가닥의 포도 줄기가 풍성하다.탐스러운 포도송이와 넓적한 이파리는 짙고 옅은 색의 농담이 살아있다.넝쿨손은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린다.아래는 하얗게 공간으로 남겨 여백의 미를 한껏 살렸다.

유백색의 커다란 항아리를 캔버스 삼아 짙은 갈색의 철화(鐵畫)로 포도나무를 그린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다.조선 백자의 황금시대인 18세기 영조 때 금사리 가마에서 빚어낸 이 백자는 우선 그 크기가 압도적이다.

높이 53.3cm,메이저 슬롯 사이트 ip아가리 지름 19.4cm,메이저 슬롯 사이트 ip밑지름 18.6cm로 조선 백자 중 대작에 속한다.워낙 크기 때문에 물레 위에서 한 번에 빚을 수 없어 위아래를 따로 만든 다음 두 부분을 이어 붙여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  철화포도문 항아리의 아가리 부분 ⓒ 국가유산청
▲  유백색의 커다란 항아리를 캔버스 삼아 짙은 갈색의 철화로 포도나무를 그렸다.도화서의 화원이 가마터에 와서 도자기에 직접 그림을 그렸다 ⓒ 국가유산청
1962년 국보로 지정되어 조선 백자를 대표하는 이 항아리 또한 수려한 외관만큼이나 소장자들과 얽힌 이야기가 유명하다.이 백자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철도주식회사 전무였던 시미즈 고지(淸水幸次)라는 일본인 수집가가 수장하고 있었다.그러다 8·15 광복과 함께 미 군정이 시작되었고 '골동품 국외 반출 불허'라는 조치가 내려졌다.

난감해진 시미즈 고지는 평소 집안일을 봐주던 김씨에게 "나중에 반드시 찾으러 올 테니 잘 보관해 주시오"라는 부탁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다.그렇게 1년이 지난 후 일이 터졌다.김씨에게는 망나니 같은 노름꾼 아들이 있었다.노름 밑천이 떨어진 아들은 아버지 몰래 백자 항아리를 인사동의 골동품상 권명근에게 2만 5천 원을 받고 팔아버렸다.권명근은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살던 집까지 팔았다고 한다.

골동품에 대해 수준 높은 감식안을 가졌던 권씨는 돈방석에 앉을 꿈을 꾸며 한껏 부풀어 있었다.당시는 해방과 더불어 일본인들이 두고 간 문화재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골동품 업계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권명근은 백자 항아리를 누구에게 팔까 생각하던 중 당시 수도경찰청장이며 문화재 수집가로 유명한 장택상에게 가져갔다.

▲  국보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항아리가 워낙 크기 때문에 물레 위에서 한 번에 빚을 수 없어 위아래를 따로 만든 다음 두 부분을 이어 붙여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 국가유산청
그러나 이게 화근이 됐다.권명근은 경찰서에 끌려가 '장물 취득'이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후 석달도 안돼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됐다.항아리를 권명근에게 넘긴 김씨 또한 양도 각서를 쓰고 나서야 자유로워졌다.모든 게 다 잘 짜인 각본이었다.

마침내 백자 항아리는 합법적 형식을 갖추어 장택상에게 넘어갔다.이후 선거에 나온 장택상은 정치 자금 마련을 위해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거금을 받고 넘겼다.이렇게 역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으며 이화여대 박물관으로 들어온 조선 명품 백자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되어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문화매거진 <대동문화> 152호(2016년 1,2월)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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